맛있는 커피는 온도가 적당하다.
맛은 기본일 거고.
잔받침이 있어야 하고.
제공자가 식음자의 입 닿는 곳을 손으로 잡는 비위생적인 일이 있어선 안된다.
이런 거 이야기하면 비호감 혹은 밥맛이라고 할 것이 분명해서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표정과 눈빛으로 레이저가 나갈 것이다.
이런 것을 지키지 않거나 모르는 바리스타는 알려줘도 대부분 지키지 않을 것이므로 두 번은 안 가게 되는 것 같다.
자주 가는 커피집이 늘 있다.
남이 해주는 커피가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커피조차 직접 해 마시고 싶지 않은 날도 있기 때문이고 단골이 되면 그곳은 살 곳이 되기도 한다.
단골이지만 커피집주인과 친해지지는 않는다.
요즘은 커피집주인도 손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곳이 있다.
환영하는 바이다.
친하지 않아도 친할 수 있다.
생각만으로 안온해지는 관계가 있지 않겠나.
친하다는 말 자체부터 별로다.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 신뢰하는 관계가 나는 더 좋고 지향한다.
아주 가끔은 자주 가니 커피집주인이 서비스를 줄 때가 있다.
고맙긴 한데 몇 번 반복되면 나도 뭔가 내놓게 되고 그러다가 손님이 없을 때는 의자를 당겨와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나도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요즘은 거의 안 그렇지만.
예전에는 불편했는데 요즘은 자기 이야기하는 사람들 보면 고맙다.
단, 여러 번 반복하지 않는 조건에서.
내 이야기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는 욕망.
그것이 무엇이든 내놓는다는 차원에서 보시가 아닌가.
배설일 때도 있는데 그것마저 말하는 자의 몫일테니 듣는 사람에게는 수혜이다.
물론 남의 험담으로 가득 찬 이야기에 같이 앉아있는 것은 귀를 씻고 싶은 일이겠지만 설령 그런 시간이라 해도 그것은 정보이다.
험담하는 인간이었구나... 하는.
자기 말은 수행이고 남의 말은 법문이라고 했다.
앗,
살 곳을 커피집으로 정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좁은 커피집은 오래 앉아있기가 그렇다.
점점 더 그래간다.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잔 마시거나 빵을 사 먹거나 하지만.
그래서 요즘에는 커다란 커피집이 단골이 되어간다.
아무도 말 안 시키고.
여러 잔 마셔도 뭐 마시는지 모를 것 같고(알까?)
옛날 어느 작은 커피집처럼 헤어진 애인 이야기 하다 울고불고하는 커피집주인을 위로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한동안 안 가서 눈치 안 봐도 괜찮고.
집값이 호텔 장기투숙보다 비싼 것도 같아 나는 가끔 장기투숙도 알아볼 때가 있다.
단 언제 죽을지 몰라서 오래 살까 봐서 용기가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는 커다란 커피집 앞에 저렴한 호텔이 있다면 이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