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 Nov 25. 2023

세 번째 수요일

다시 대구에서

낯선 곳에 가서 며칠 살아보는 습이 있다.

낯선 곳에 가서 잠이 들면 더없이 편할 때가 많다.

나는 그것을  그곳 땅의 에너지라고 믿는다.

땅을 느낀다.

땅의 평평함과 온도를 느낀다, 느껴진다.

대구는 양명하다.

줄기들이 굵직굵직한 산들이 떡 버티고 있어 안온하다.

산줄기 틈으로 지나가는 바람마저 강단이 있다.

한두 마디로 툭 던지는듯한, 마치 선문답 같은 목소리와 이야기들이 고단하지 않아 좋고 심플해서 남겨지는 것이 없다.


저번에는 북대구에 가서 며칠 있었는데 이번에는 성서지구에 가방을 풀었다.

몇 년 전에는 안심동에서 며칠, 황금동에서도 있었고.

성서지구는 공장이나 창고가 많지만 건너편에 계명대학교도 있고 아트홀도 있고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는 커다란 커피집도 있다.

나에게 그것이면 충분하다.

 또한 삼십 분쯤 달리면 흐드러지게 꽃이 펴는 들판 곁에 금호강이 흐른다.

금호강의 반짝임에서 깊이를 느끼고 그 깊이가 마치 내 몸의 깊이 같아 진동이 느껴진다.


대구에 가면 흔들리고 휘둘리던 스스로가 잠시나마 단단해진다.

그 단단함을 잘 붙잡고 서울로 돌아와 대구를 앓는다.

미열처럼 앓는다.

대구는 끄떡도 하지 않고.

나를 부르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시 대구에 가면 처음 본 듯 나를 대한다.

나는 계속 대구에 간다.

다시 갈 것이다.

곳을 정할 수 있을까 여러 번 대구에 갔으나 나 따위 살거나 말거나 관심 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

그런 대구에 나는 마음이 상한가.

그렇지 않다.

더 좋다.

살 곳을 정하기 위한 절심함 때문에 마음이 상할 틈은 없다.


가끔 누워서 대구의 집값을 검색한다.

여전히 돈이 여유치 않지만 지도를 보면서 씩 웃어진다.

대구 지도를 보면서 살 곳을 정해 보는 일이 상상 속에서나 할 수 있는 일지만 행복하다.


이전 02화 두 번째 수요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