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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Nov 10. 2023

첫 번째 수요일

창덕궁은 내가 살던 곳이었을지 모른다.


아침 일찍 창덕궁 옆 커피집에 갔다.

미술관옆 동물원처럼 창덕궁 옆 커피집의 존재가 행복과 고마움으로 와닿는 아침이었다.

메뉴도 마음에 든다, 롱블랙.

시간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하루를 책 읽기나 타로 카드 한 장 뽑아보는 일로 시작하는 나는 집 나서기 전 타로 카드는 뽑아봤기 때문에 롱블랙을 다 마시기까지 남은 소설의 40페이지를 읽을 작정이다.

장편은 잘 읽지 않는데 일부러 장편 읽기를 시작했다.

다른 게 살면 새로운 살 곳도 발견되지 않을까 해서다.


가끔 생각했다.

나는 궁궐에서 살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유는 분명하다.

궁궐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내 집 같다.

사실 나는 거의 모든 집이 내 집 같다.

이 맥락 없는 욕심 때문에 평생 괴로웠던 것이 분명하다.

어리석어 괴로웠다는 것을 알고부터 어리석어도 괴롭지 않게 되었다.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괴로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무지하게 살아가다가 어디선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눈물콧물 다 빼고 심장까지 너덜거리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 회피나 외면의 방법으로 또 사는 것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작가 후기를 읽고 목차를 다시 한번 보고 책표지를 오른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먼지도 쓸 겸 그리고 나의 체온을 전해본다.

종이가 된 나무에게.



돈화문으로 걸어갔다.

날씨까지 참 좋았다.

우주가 내 중심으로 돌아주는 날에는 날씨가 좋은 것이다.


창덕궁은 오밀조밀하며 배경으로 나무가 많다.

눈부신 초록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어디쯤에서 기거했을까 그려본다, 기억해 본다, 상상해 본다.

종이가 된 나무에게 경을 읽어주고 싶다.


어느 건축가에 의하면 궁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민족 DNA 때문이라고 했다.

융의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일까.


요즘 서재는 매우 넓게 설계되곤 한다.

서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거나 공유하고 싶은 마음 일 것이다.

조선시대 서재는 책이 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 가까이 토굴 같은 면적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곤 하였다고 한다.

책 읽기에는 빛이 충분한 남향보다는 북쪽이 안온했을 것이다.

옷 하나 더 입고 읽으면 추위는 잊혔을 것이다.

사실  인연이 닿는 책을 읽을 때면 내가 누군지도 잊는 것이 아닌가.


후원으로 가는 몇 개의 언덕들이 아름다웠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면 나는 분명 언덕 위에 서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규장각이 보였다.

부용지는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서로를 비추고 있는 자연과 조우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았다.

가까이 가지 못한다.

부용지가 나를 비춘다면 나는 더 작아질 것이다.

사라질 수도 있다.

보잘것없이 살아왔음을 잠시 잊고 옛집을 찾아 달려온 기분이 들었다.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 이튿날 명해서 만들어진 왕실 도서관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에 상처가 깊었을 정조가 도서관을 만들 생각을 하기까지 깊은 연유를 알 길은 없으나 나아갈 방향을 책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규장각은 정조의 명에 의해 마련되었으나 아이디어는 세조 때 양성지에 의해서라고 한다.

정조는 임금의 시문과 글씨를 보관하면서 양성지 문집도 규장각에서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서른 세명의 관원도 양성지의 손들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잘 살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자손을 위한 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잘 살고 있다면 그것은 조상의 훌륭함과 선함때문이 아닌가.


규장각 옆에는 정자가 몇 곳 있다.

여기도 앉아보고 저기도 앉아보고.

숨을 들이셨다 내셨다.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느라 일생 고생만 하는 나의 애처롭고 고마운 목 운동도 살살해보고.


해가 졌고 바람이 차가워졌다.

눈물처럼 콧물이 흘렀다.

배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다시 돈화문을 향해 거꾸로 걸었다.


걸어 내려왔던 아름다운 언덕길이 조금 어둑해졌고 살 곳을 여기에 정해 볼까 싶다가 마음에 창덕궁 후원을 담아가는 쪽으로 타협을 본다.


마음에 있으면 다시 만난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여러 번 경험했다.

기다리지 않으면 쉽게 만나지기도 하였다.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결국은 만났다.

그냥 살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또다시 살 곳을 찾아 나서야 하겠지만 집값은 너무 비싸지만 언덕 위로 지던 해가 다시 떠오르듯 나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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