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 Nov 17. 2023

두 번째 수요일

책 무더기 속에  살 곳이 있지 않을까




왜 이렇게 끝없이 헤매는 건지, 역마살이나 지살이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 생각했다.

발끝을 세우고 앉아있거나 두 좌골이 바닥에서 비스듬히 떠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하곤 하는데 무슨 일 생기면 튀어나가기 위한 준비된 자세 아닌가.

나의 이런 자세에 대해 늘 고민해 왔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걸까.

어디에서 불안을 느끼는 걸까.

여기도 가 보고 저기도 가 보고... 살고 싶은 곳은 집 값이 너무 비싸고... 그러다가 이제 살고 싶은 곳도 없어졌다.

비싸서 좋은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아는데 반평생이 걸리다니 바보가 아닌가.

비싸지 않아도 살 만한 곳은 사실 내가 부족했고.

집과 사람도 암묵적인 서로의 동의가 있어야 함께 지낼 수 있다.

이것은 사랑처럼 기적 같은 것이다.


살 곳을 정하기 위해 놓지 않고 계속 타진해 온 곳이 책이다.

책은 사물이 아니다.

더 이상 말이다.

간이고 시간이다.

세계이고 우주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머물며 살 곳을 정해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불행과 행복 사이 다행히 있는 것처럼, 나는 그 중간지점에서 좌골을 비스듬히 바닥에 기대며  발끝을 세우며 살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책을 읽지 못하는 날은 안절부절못했다.

화도 나고 불안했고 눈알을 굴리면서 호시탐탐 책 읽기를 위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찾았다.

 

어디를 가도 근처 서점에 꼭 가보곤 하는데 이렇게 찾아다니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긴 하다.

조금 줄긴 했지만.


이유가 있다.

읽고 싶어 주문해 놓은 책들이 탑처럼 높기 때문이다.

시력도 옛날 같지 않고 세상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안 후부터 책 읽는 속도가 좀 느려진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내 불안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책 무더기 속에 앉아있으면 좋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죽어도 좋겠다, 책 무더기 속에서 말이다.


책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라~하고 말해 줄 것 같았다.

책이 주는 시그널을 기다리는 것에 지치지 않는다.

계속 기다릴 것이다.

또한 그곳으로 갈 차비가 나는 항상 되어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좌골은 비스듬히 떠 있고 발끝으로 바닥을 버티고 있구나.





이전 01화 첫 번째 수요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