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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Jul 17. 2024

여덟 번째 수요일

너무 높고 멀다


몇십 년 만에 알게 된 것이 있다.

착각 속에 살았다는 것.

믿어왔던 것, 확신해 왔던 것, 느꼈던 것.

안다고 생각했던 것, 모르는 것이 아니라 회피했던 것.

태어난 순간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뻔.

어리석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혜로웠다면.


한 가지만 예로 들겠다.

모든 것을 이야기해도 괜찮고, 언제나 내 편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참 대단한 착각이다.

착각의 근거는 어디였을까.

나의 어리석음과 나태함이었을 것이다.


부모도  노쇠하면 어린이가 된다.

어린이가 되면 당신 맘대로 산다.

나도 어린이였었으니 불평은 아니다.

어린이를 비하하는 것도 아니다.

목도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

순리란 이런 것인가.

나도 그리 되어가는 중인가.

아마도.


결국 모두 남이고 나조차도 내 자식에게 남일 것이다.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일 것.


내 뒤에서 크고 단단한 배경이 되어 주었던 부모가 어린이가 되어가는 시간은 내 자식이 나를 배경으로 사랑스러웠던 시절과는 아주 멀리 있다.

다른 세계이다.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며 어느 발에 힘을 더 줘야 할까 생각할 틈이 없다.

어쩌면 나도 어떤 세계이겠지.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서 다리를 좀 펴고 앉아 숨을 한번 깊게 쉬어볼까.

어디쯤에서 엉엉 울부짖어볼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는 값이 너무 높고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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