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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ma Jun 22. 2022

동화_꿈속의 외딴 섬

<꿈속의 외딴 섬>


모래 알갱이가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간지러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을 떠보니 또 그곳이었다. 꿈속의 외딴 섬. 아무도 없는 그곳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었다. 혼자여도 괜찮아. 속으로 나직이 되뇌었다. 햇볕을 받아 따스한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발목에서 찰랑거렸다. 아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항상 이 시간, 이 자리였다. 햇살이 정수리로 쏟아지고 모래가 발가락을 간질이는 이 시간과 이 자리.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는 이리저리 탐험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나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도마뱀의 꼬리를 보거나, 백번 뛰어도 손이 닿을 것 같지 않은 키 큰 야자나무 꼭대기를 쳐다보거나, 때로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발꿈치 뒤에서 움직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느끼기도 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 섬은 아이만의 섬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 그래서 늘 혼자인 그곳.  


아이는 혼자여서 좋았다. 자신에게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늘 어깨를 움츠리고 눈치를 보던 아이도 이곳에서만큼은 어깨를 펴고 걸었다. 가장 좋은 건 하늘을 보고 걷는 거였다. 학교에서는 늘 바닥만 보던 아이도 이곳에서만큼은 하늘을 보며 걸을 수 있었다. 구름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면 아이도 구름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잠시 하늘에서 쉬어가면 아이는 그 자리에서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서서 팔을 벌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조금만 세도 하늘로 솟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으로. 실제로 약간 몸이 붕 뜬 것 같기도 했다. 여긴 꿈속 외딴섬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날아오를 수도 있을 테지. 그래서 아이는 혼자여도 괜찮았다. 


그러다 꿈에서 깨고 나면 아이는 늘 고개를 푹 숙이고 하루를 시작했다. 새파란 하늘도, 유리알처럼 투명한 바닷물도 없었다. 짹짹거리는 새소리도, 풀숲 사이에서 뛰어다니는 메뚜기도 없었다. 아이는 축 처진 어깨로 침대에서 기어 나와 의기소침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학교에 가면 고개를 푹 숙인 채 교과서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모두가 이런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아이는 감히 고개를 돌려 아이들과 시선을 맞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난 겁쟁이야. 그러니까 혼자여도 괜찮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모래 알갱이가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순간, 무언가가 엄지발톱을 톡톡 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다보니 작은 유리병이었다. 유리알처럼 맑은 물속을 떠다니는 유리병.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편지. 아이는 바위에 앉아 유리병을 열어보았다. 누가 보냈는지, 누구에게로 보냈는지도 모르는 그 작은 쪽지를 열어보는 아이의 마음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다.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펴니 질문이 하나 쓰여 있었다. 들어가도 돼? 아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좀 전까지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작은 창문틀이 둥둥 떠 있었다. 아이는 슬며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살짝 열어보니 누군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열었다. 맨 뒤에 앉아 늘 책만 보는 같은 반 친구.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애가 거기 서 있었다. 안녕이라고 말해야 하나.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입을 뗐다. 안녕. 아이는 엉겁결에 고개만 끄덕하고 말았다. 그 친구는 아이의 눈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윙크를 했다. 아이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창문을 닫고 싶었다. 이 어색한 상황이 싫어. 그러자 정말 마법처럼 창문이 없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아이만의 꿈나라였으니까.


꿈에서 깨고 나니 왠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꿈의 섬에서 같이 노는 것도 좋았을 텐데. 송사리를 잡고, 향긋한 꽃내음을 맡고. 혼자 즐기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이 풍경을 함께 나눴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자신 때문에 사라져버린 창문을 생각하니 후회가 됐다. 그래서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어깨를 움츠리고 학교로 향했다.


낮게 깔린 하늘 위에는 구름만이 가득한 회색빛 아침이었다. 아이는 골목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 학교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자신에게 윙크하던 그 친구의 얼굴이 구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친구가 오늘밤 꿈에 또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이름이 무언지, 왜 왔는지 물어볼 수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바닥만 보고 걷던 아이는 교실 복도에서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아이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꿈속에 나타난 그 친구였다. 그 친구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있던 아이는 엉겁결에 윙크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어떡하지. 마음이 콩닥콩닥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바로 그 때였다. 그 친구는 마치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웃으며 윙크를 해보였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아이는 꿈 속 외딴섬에서 혼자여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 더 괜찮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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