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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ma Jun 22. 2022

동화_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 오브 뮤직>


그것은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어느 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모두가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공기를 만끽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일이었다. 아이는 어쩔 줄을 몰랐다. 워낙 눈물이 많아 밤마다 우는 아이었기에 오랫동안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아이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울면 안 돼. 이제 혼자 울어도 모두가 알게 될 거야. 나는 울지 않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가지 못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 세상이 아닐 수도 있는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누구나 꿈꾸는 하늘과, 하늘을 고스란히 품은 호수, 옹기종기 모인 작은 집들이 손을 잡은 듯 사이좋게 지내는 마을, 그러나 아이는 그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고 밤마다 울음소리를 낮추려 노력해야 했다.


그 즈음 밤만 되면 마을에는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엊그제는 칠판을 긁는 듯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제는 화재경보기에서 나는 경고음 같은 소리가, 그리고 오늘 밤에는 높은 주파수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칠판 있는 집을 찾아다녔고, 어디서 불이 났다 온 동네를 살폈으며, 뭔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기계가 있나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밤마다 이상하게 나는 소리의 원인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시원한 밤바람도 마다한 채 밤마다 창문을 닫고 잠에 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힘든 나날이었다.


마을에 대한 애착으로 자원해서 야간 순경을 돌던 할아버지 한 분이 소리의 근원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몇 주 후였다. 밤에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따라 걷다가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순간이 오면 뚝 끊기고, 또 그곳을 지나가면 뒤에서 그 소리가 이어서 나는, 이상한 상황을 몇 번 겪은 후였다. 할아버지는 신발을 벗어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조심 다가갔고, 이번에는 발소리를 듣지 못한 아이가 차마 울음을 참지 못해 소리가 새 나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소리의 근원을 알아낸 바로 다음날 아침, 마을 회의를 소집했다.


아이는 자기를 찾아온 마을 어른들의 얼굴을 차마 보지도 못하고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요. (훌쩍) 눈물이 나면 이상한 소리가 나요. (훌쩍) 소리가 안 나려면 안 울어야 하잖아요. (훌쩍) 근데 눈물이 안 멈춰요. (훌쩍) 안 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눈물이 나요. (훌쩍) 너무 죄송해요. (훌쩍) 이렇게 아이가 눈물 섞인 말을 털어놓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귀를 찌르는 소리는 계속됐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아이가 더 슬퍼할까봐 눈을 찡그리는 일 하나 없이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작은 솜뭉치를 귀 안에 껴놓고 간 건 아이에게 비밀이었다. 아이의 얘기가 다 끝났을 때 마을 어귀에 해바라기를 키우는 할머니 한 분이 손을 잡아주며 물었다. 안 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눈물이 난다고 했지? 그럼 일주일에 한 번 울어도 되는 날이 있으면 어떨까? 그때 마음껏 우는 거야. 그리고 다른 날에는 씩씩하게 사는 거지. 어때? 할 수 있겠니?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요? 아주 시끄러울 텐데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이면 무슨 요일이에요? 할머니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걱정은 우리가 하마. 그리고 마을 어른들은 곧장 마을회관으로 걸어가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월요일 저녁은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굴뚝 청소로 모두가 바쁜 날이었기 때문이다. 화요일은 솜사탕 아저씨가 반대했다. 그날은 산 속 깊이 올라가 구름을 따 와오는 날이라고, 그래야 솜사탕이 더욱 포근하게 만들어진다고 했다. 솜사탕 아저씨가 만들어주는 포근한 솜사탕을 어렸을 때부터 먹어 온 마을 사람들은 고민 없이 화요일도 포기했다. 수요일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독서 모임을 갖는 날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건 차치하고 마을의 전통을 깰 수 없다는 이유로 수요일도 제외되었다. 목요일 밤은 구두 닦는 아저씨가 마을 사람들이 내놓은 구두를 수거해 반짝반짝 윤을 내는 날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반짝이는 구두 또한 포기할 수 없어 목요일도 어쩔 수 없이 후보에서 빼야 했다. 이렇게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웅성웅성 회의를 이어가다 보니, 다행히도 금요일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말을 앞둔 시간이라 다들 너그러워지는 금요일 밤. 마을 사람들은 그 너그러움을 아이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오후, 마을 사람들은 각자 집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솜사탕 아저씨는 이십 년 간 옷장 안에 넣어둔 상자를 꺼내 먼지를 털어 냈고, 은퇴한 음악 선생님은 손이 떨리기 시작한 후 저주를 받은 듯 다시는 만지지 않았던 악기 창고의 문을 열었다. 모두가 상자에서, 케이스에서 먼지를 털어내던 것에 비하면 구두 닦는 아저씨의 악기는 반짝반짝했다. 마을 사람들의 구두를 닦아주듯이, 매주 손으로 어루만지고 손수건으로 반짝반짝하게 닦아놓았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깨끗하게 닦은 악기를 들고는 금요일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아이의 집 앞 작은 공터로 모였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가족의 손을 잡고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약속의 금요일 밤, 아이는 언제 울어야 할지 시간 약속을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아이는 창문을 꼭꼭 닫고 두꺼운 이불 안으로 들어가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며칠을 참은 터라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눈물샘을 꾹 막으며, 소리 죽여 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를 생각했다. 이렇게 자신만의 작은 고통을 숨길 수가 없다는 것,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자신의 고통을 알게 된다는 것이 이토록 고독한 일인지 이전엔 미처 몰랐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집 앞 창문가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일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이는 고통보다 훨씬 큰 호기심에 사로잡혀, 이불 밖으로 나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거기에는 마을 어른들이 바이올린을 들고 할머니 지휘자의 사인을 기다리는, 마치 사진처럼 모두가 정지한 모습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는 너무 놀라 숨을 멈추고 감정의 진공 상태에 빠졌다.


드디어 지휘자의 들이마시는 숨과 함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었다. 바로 이때였구나. 아이는 바로 이때가 자신이 울어도 되는 시간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눈물은 흐르고 있었다. 아이의 날카로운 소리는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신발 닦는 아저씨도, 솜사탕 파는 아저씨도, 은퇴한 음악 선생님도 모두 거기에 있었다.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마을 어른들이 모두 바이올린을 들고 거기 모여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속에서, 그리고 바이올린 선율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묵혀놓은 고통의 감정을 맘껏 쏟아냈다. 소리 높여 울어도 귀에 들리는 건 아름다운 음악 소리뿐이었다. 아이는 자신만의 작은 고통을 숨길 수가 없고,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자신의 고통을 알게 되는 것이 마냥 고독한 일이 아니라 때로는 위로가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밤부터, 마을 사람들은 다시 창문을 활짝 열고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 BGM: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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