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임현석, 서고운, 이유리, 이서수, 김화진, 『혹시 MBTI가
단지 너를 더 알고 싶어서
정대건, 임현석, 서고운, 이유리, 이서수, 김화진,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읻다, 2022)
알고자 하는 욕심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유형들
MBTI에 속해있으나 바깥에도 존재하는 사랑에 관하여
읻다 출판사의 MBTI 테마소설집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가 MBTI 테마소설집의 첫 번째 소설집으로 출간되었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에는 정대건, 임현석, 서고운, 이유리, 이서수, 김화진이 참여했다. 이들은 INTJ, INTP, ENTP, INFJ, INFP의 모습을 소설에 녹여내 각각의 마음이 발현되고 어긋나는 다양한 풍경들을 묘사한다.
처음에는 혈액형처럼 생각했다. 너는 A형이니 소심하고 나는 O형이니 같은 컵을 써도 되겠다는 식의 생각이었다. 아마 코로나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부터 이와 같은 성격유형검사가 유명해졌던 것 같다. 너도나도 검사했고 처음 만나는 사람의 MBTI를 맞춰보거나 어떤 유형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논쟁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어떻게 사람이 열여섯 개의 유형으로 나뉠 수 있는지 의심하면서도 막상 어떤 유형의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 납득하곤 했다. 정말 신기하면서도 어딘가 음흉한 검사라며 말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 MBTI를 물어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질 때쯤 이러한 질문은 타인을 더욱 이해하기 위함인지,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 가르기인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어렸을 때(가령 청소년 시절이라거나)를 생각하면 한 친구를 알기 위해 대화를 시작으로 식사, 친구의 집 방문 혹은 오랜 시간 운동장을 빙빙 돌거나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핫도그를 먹어야만 가능했던 유대가 있었다.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떤 사람의 한 면모만을 깊게 볼 수 있었으나, 그 일관된 표정을 보기 위해 쏟아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게 MBTI는 이러한 것보다는 시대적 상황이 효율을 따지니 사람을 가리고 만나는 것도 초반부터 효율적으로 하려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르게 살펴보면 누군가를 더 알기 위해 초반부터 성격을 알고 조심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가능하게끔 저자들이 소설을 구성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있다. 사랑을 기반으로 소중한 당신을 더 알기 위한 도구로서의 MBTI를, 혹은 지도 같은 MBTI를 말이다.
- INTJ, INTP, ENTP
SNS를 망령처럼 떠도는 나에게 올해 가장 유행하는 밈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 “너 T야?”를 꼽을 것이다. 슬퍼서 빵을 샀다는 사람에게 무슨 빵을 샀는지 묻는다거나 슬펐기에 빵을 산 것으로 슬픔을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냉혈한이 되어버린 T들을 생각한다. 사실 그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방식으로 말할 뿐. 이것이 잘못일 리는 없다. 흔히 F들은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느라 주관적인 말을 한다면, T들은 “밥 때문이 아니고요. 지금 인터넷의 신뢰성에 대해 말하는 거잖아요.”(정대건, 「디나이얼 인티제」)라고 말한다. 정대건의 소설에서는 30대 후반이 되어 연애에 그렇게 흥미가 없지만 그래도 하려면 한다는 주인공 경민이 MBTI 신봉자처럼 보이는 ENFP 은주와 소개팅 후 짧은 연애를 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소설에서는 T인 경민이 INTJ만은 피하려는 은주에게 맞추려다 실패하고 어떤 이해에 도달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인티제인 경민은 다만 “MBTI로 판단되고 싶지 않았다"라는 것과 공감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은 광범위한 T의 이해를 보여주는 대목이지 않았나 싶다. 이와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T의 모습은 임현석의 소설 「주말에는 보통 사람」의 주인공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강아지 브이로그를 시작하겠다는 윤아와 함께 주말마다 점을 보는 인팁의 모습을 담았다. 임현석이 보여주는 T의 모습은 누가 봐도 T이다. 위로를 위해 사회적으로 배운 F의 모습을 따라 하고 “일반적이라는 게 정의가” 뭐냐고 생각하다가 “꿍꿍이란 어떤 감정”인지 생각하는 모습은 논리의 흐름이 중요한 T의 모습을 담으면서도 윤아를 위해 주말을 희생하며 따라다닌 배려 넘치는 모습은 정말 궁금함에서 시작한 T의 마음이 발현한 태도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서고운의 「도도의 단추」에서 보이는 T의 모습은 어딘가 앞에서 보인 T들과는 또 다르다. 반려 고슴도치를 선물받은 영지가 단추를 먹은 도도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곤한 상황 속에서의 T의 대처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서고은의 T도 T의 다정함을 “며칠 몇 시, 어느 병원인지” 알려달라고 하는 모습 등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유물을 뒤집어쓴 아이의 머리에서 왕관을 빼준다거나, 문자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전달하는 모습은 어지간한 T의 모습이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활발하다는 점에서 역시 E는 E다 싶은 소설. 인물의 에너제틱함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슷한 소심함 같으면서도 서고은의 T는 더 활발하다. 이러한 점들을 분석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대략 정대건, 임현석, 서고은이 보여주는 T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논리를 기반으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점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되, 자신이 납득할 필요가 없거나 그럴만한 주체가 되지 못하는 등 여건에 따라서는 질문 없이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들의 모습이 어딘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듯했다. 각자가 잘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ENFP, INFJ, INFP
F의 마음은 F인 나도 조금 아득할 정도로 과하게 묘사되곤 한다. 노래를 들으며 운다거나, 책을 읽으며 우는(INFJ인 나는 내 상황을 생각하면 코가 찡해질 뿐인데...) 사람들로 묘사된다. 타인의 마음을 아주 공감하고 사랑의 귀재들. T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여리면서도 어딘가 유별난 마음들. 이들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해서 그렇다기보다는 강아지와 같은 메커니즘이 아닐까 싶다. 개과(전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는 유전학적으로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고 한다. 꼬리를 빙빙 돌리고 사랑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저 사람이 좋다거나 어떤 사람을 알고 싶어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마음과 마음이 팔짱을 끼길 원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어딘가 F에는 낭만이 있다. 이러한 낭만은 이유리의 소설 「그때는 그때 가서」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유리는 디자인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하는 아쿠아리움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가 현실적인(어딘가 T로 보이는) “정우”와 헤어지고 “김선자”씨와 함께 청소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ENFP인 나는 전 남자친구 “정우”가 말한 현실적인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메커니즘 자체가 그러지 못하게 태어난 듯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면서도 청소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김선자”씨의 모습은 어딘가 F의 낭만을 제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F들끼리 모여 함께 푸른 해파리를 보는 장면은 삶을 사랑하려는 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낭만의 모습을 보여주는 F와는 다르게 사람을 내치면서도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는 INFJ 주인공을 볼 수 있다. 이서수의 「알고 싶은 마음」에서는 면접 탈락을 자주 겪은 주인공 “온해”는 친구 “은명”을 걱정하며 같이 제주에 가서 여러 상황 속에서도 사람의 곁에 있겠다는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다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여려 보이지만, 아주 단단한 각오에서 시작된다. 이 사람만은 내가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 INFJ로서 이서수의 소설은 조금 많이 좋았다. 나의 모습으로 더 살아본 사람의 모습을 본 것만 같았다. 조금 따듯한 미래를 엿본 느낌. 그 느낌이 좋아서 이서수의 소설은 가장 F같지 않은 F의 마음이지 않나 싶다. T이면서도 F의 마음으로, 어딘가 이중적이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삶을 이서수의 소설에서는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화진의 「나 여기 있어」는 주변의 상황으로 자신까지 삶의 벼랑에 내몰린 주인공이 다시 회복의 문 앞에 선 듯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잘 모르지만 INFP는 “고통에 대한 수용력이 높은 사람, 타인을 유심하게 관찰하고 그에 맞는 응답을 내놓는 사람”(책소개에서)이라고 한다. 김화진의 주인공 “지원”은 자신의 친구의 죽음에 자신을 허깨비처럼 생각하는 시절을 겪기도 하고 무력함과 상실 속에서 맴도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언뜻 보면 가장 F에 가까운 건 INFP가 아닐까 싶다. 여리고 여리지만 누구보다 사랑으로 가득한, 불나방 같은 유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사랑은 주변을 환하게 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
이유리, 이서수, 김화진의 소설들은 이전에 다뤘던 T의 모습들에 비해 더 마음에 가까운 생각이나 행동을 다룬다고 느꼈다. 이들의 태도는 조금 더 나보다 너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서 F들은 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며 느낄 수도 있다. 타인의 행복이 어떤 이해와 논리의 과정과는 무관하게 자신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이것은 윤리나 옳음과는 상관없는 삶의 태도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소설은 읽으면서 어딘가 더 아픈, 그러면서도 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말하지 않나 싶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든 유일한 생각은 삶과 시대가 진창으로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꼭 쥐려고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처음 나의 생각이었던 ‘MBTI는 과연 효율성에 기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를 읽으면서 누군가는 효율적으로 할 것이며 누군가는 그것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기반을 쌓으려 하겠다고 생각했다. INFJ로서 또 생각이 많은 포인트인가? 하지만 나는 후자이고 싶다. 당신이 무엇이든 나의 질문은 당신을 오래 보며 더 이해에 닿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싶다는 태도로서의 발화로 해석되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오랜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