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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임대료

김성철

  쇠를 갈 때마다 그늘이 찾아왔다지요 우악스런 사낸 손에 밀려 트이는 길은 스스로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 보였죠 길의 골목은 두 줄 혹은 세 줄로 새겨지겠지만 집주인 따라 골목의 두께도 다르겠지만 두께야 무슨 상관 있겠어요 상체 말아 어둠 틀어 안은 사내는 아랑곳없이 그늘을 쇳덩이에 새기고 있죠 쇳가루는 엄지 위에서 납작 업드린 채 비늘 털고요

  사내의 무딘 표정은 골목 끝이 보일 때쯤이나 볼 수 있을까요? 목련꽃보다 둥근 백열전구가 봉긋이 불 피우면 사내는 굽은 상체 곧게 펴고선 골목의 깊이를 가늠하죠 그리고 입 모아 후- 열쇠 그늘이 우르르 뛰어 내리겠죠 저 이가 품은 어둠의 질량은 얼마큼의 무게일지 나는 털려진 어둠 죄다 모아 사내의 밑천을 세어보고 싶네요


  광화문 네거리 현대해상 모퉁이에는 열쇠수리공이 들어있고요 사내 품 안에는 밑천의 바닥 없는 그늘이 있고요 그늘 속에는 열쇠의 길이 골목으로 뻗어있고요 사내는 둥글게 말린 채 그늘의 임대료를 복사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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