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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 사글세에 대한 입장문

김성철

-방이 어두워요

백열전구의 촉은 낮고 어두웠으므로

내가 짊어진 그림자의 크기를

가늠하기 쉬웠다


-기이한 소리가 들리기도 해요

구석진 곳에 카메라를 들이밀면

둥근 원형의 소리들이 흑백사진처럼

찍혀 나오기도 했다

버려진 것들의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불러모으고

소리골을 따라가기도 했지만

나는 수시로 파리채를 휘두르며

소리를 흩트려 버렸다

관절염을 앓는듯한 신음이

귀청에 매달려있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있군요

일회성이란 말의 어감에서

모래알이 서걱거린다

땡볕에 뜨거워진 서걱거림의 열기가

여전히 당신이란 단어에서 서성인다

문득 나는 열병을 앓고 있으나

뜨겁지 못했단 걸 깨닫는 순간

냉동 포장된 고기 맛이 달갑게

서걱서걱 씹힌다


-한달? 두달?

마루 결의 생은 집 내력보다 깊다

옹이를 품은 세월이

처마를 따라 땅으로 기울어 내리고

기울임이 첫눈처럼 마당에 드리우면

그때

툇마루에 앉아 당신과 오랫동안 이야기하며

부끄럽고 조용하게

수줍게 오른 낮달을 고개 들어

바라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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