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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sy Aug 25. 2019

말단의 일




내가 하는 일은 사망신고서와 사망진단서를 접수하고 주민등록을 말소,

그리고 가족관계등록관서에 가족관계등록부 폐쇄를 청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유적인 저승사자가 되는 꿈을 꿨다

아무런 힘도 재량도 없고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말단 공무원 임무와

저승사자의 임무는 다르지 않았다

죽은 사람한테 그쪽으로 가면 안 되신다고

저쪽으로 가시라고 하는 것이다


공간의 반은 병원이고 반은 공항 출국장인 곳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고 먼 곳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공항 보안검색대가 돌아올 수 없는 강

망자의 섬으로 가는 곳을 상징한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에요. 심장이 안 뛰잖아요.'


그렇게 산 자들의 세계인 병원으로 돌아가려는,

그런데 죽음이라는 경계 때문인지 병원 앞을 기웃거릴 뿐

그 너머의 영안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았다


아직 자기가 살아있다고 굳게 믿는 그들을 공항 검색대로 보낼 때

꿈속의 영혼들이 보이던 적의에 찬 시선을 잊을 수 없다


말단 저승사자에게는 영장 없이 체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망자가 임의동행을 거부하고 자기 육신으로 돌아가겠다고 따지면

강제할 방법 없이 설득하다 관련 부서 통보를 하고

무기력하게 내 자리로 돌아와 앉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사라진 망자들이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알 바가 없다

아마도 저승사자 말단인 내 업무처리가 미숙하고 유도리 없다고

저승에 민원을 넣지 않을까


죽음이란 돌아올 수 없는 긴 여행

삶이라는 무대로부터의 출국인 걸까


나는 소름이 돋을 만큼 무감정하지 않았었나

나는, 나 자신은 숨을 쉬고 있었나

나도 병원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 중 하나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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