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종이학을 접어
물병을 채우듯
모아온 이유 없는 슬픔은
어느 날 숲의 학 떼처럼 갑니다
공책은 비고,
가장 사랑하는 책에 메모해 둔
여백이 있는 페이지를
기억치 못합니다
곧 더 나아가 책장에서 그리운 책을 찾지도 못하겠고
어린 시절 사랑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읽는 버릇이 없어집니다
종이학들은 멀리 날아가
동화 속에 등장한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세상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놓아주고 잃어버린 기회들은 그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갈망으로 남겨졌습니다
나는 꿈을 꾸었고
꿈은 도전적이고 위험이 가득했습니다
꿈은 영원히 현실이 되지 않을 수도
또는 영원히 현실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실없이 장난치듯 가볍게 꺼냈던 멀리 가버린
그리운 친구와 농담
돌아가지 못하는 순간들
다시 펼쳐보지 않고 어디 있는지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 오래된 세계
사랑하는 시와 소설과 멀어진 연인
그 모든 것에 다시 대화를 거는 날이 올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