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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

by 한진수 Poesy



수십 년 전 죽은 자로부터도

잉크가 마르지 않은

위임장을 받아 맡겨둔 듯

찾아올 수 있는 수완가들은

자정까지 잠들지 않고

불을 밝힌 번화한 상권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무명용사의 묘비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애틋한 얼굴로

죽은 자의 차가운 손을 들어 올린다

핏기 없는 손을 감싸 쥐어

지지선언서에 대리서명하지만

국민의 사랑을 대신 받고 싶을 뿐

국민에게 사랑을 대신 주는 건 질색이라

병역 의무는 젊어서부터

외면해 왔을 것이다


변두리의 어둠 속으로

밀려난 수완 없는 평범한 시민들은

사랑을 주기 위해 죽음을

감수하기도 한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구조대원이나

가족을 위해 탄광에 들어가는 가장,

출산을 결심하는 산모는

주어야 하는, 주고 싶은 사랑을,

죽음보다 더 소중한 것을 품고 있다

안락사를 검색해 보는 환자도

남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어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랑을 준다

사랑은 도시의 정언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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