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래비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훈 Jun 30. 2023

동주를 상상함

폭우 속에서 다시 윤동주 시인을 그리며

동주를 상상함

                                               -이창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살아나왔다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그는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버짐 핀 얼굴과 비쩍 마른 몸으로

삐걱거리는 나무 걸상에 앉아

교탁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 초롱초롱한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쳤을 것이다

영어도 가르쳤을 것이다 


산수유 진달래 흐드러진 봄날이면

꽃나무 아래에

헐벗은 아이들 두런두런 앉혀 놓고

시를 들려줬을 것이다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몽당연필을 들고 함께 시를 썼을 것이다 


아이들 아무리 많아도

자전거를 타고 마을 고샅길 이곳저곳 누비며

가정방문을 다녔을 것이다

단 한 집도 거르지 않고

양 볼이 패인 가난한 부모들에게

땀흘려 공부하는 풀꽃같은 아이들

한 명 한 명 칭찬했을 것이다 


낙엽들 온통 여기저기 뒹구는 가을날

야외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노란 은행잎 하나씩 주워 와

시가 실린 국어책 책장 사이에 끼우게 했을 것이다

소중히 간직할 사랑의 마음을

말없이 아이들 가슴에 새기려 했을 것이다 


길고 긴 겨울

눈이 내리고 쌓인 날

운동장 밖에 놀 곳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눈을 맞췄을 것이다

흥겹게 눈을 굴렸을 것이다

그리움의 탑을 쌓듯 눈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눈사람 만들다 그대로 눈사람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날이면 날마다

해가 지는 교실 창가에 앉아

오래도록 시를 썼을 것이다 


어두워 가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눈을 뜨고 별을 기다렸을 것이다 


뜨는 별 하나 하나에

어릴 적 용정의 그리운 이름들

숨죽인 소리로 한 명 한 명 불러냈을 것이다

별의 눈빛과 오래도록 눈맞췄을 것이다 


교정의 느티나무 높은 가지 끝

지는 별 하나 걸려 오도가도 못해

시린 바람에 떨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나무 아래로 가

천천히 오르고 올랐을 것이다

옷섶에 넣고 내려 왔을 것이다 


그 별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 사진--


--릿교 대학(윤동주가 처음 유학 갔던 대학) 정문 앞에서 한 컷--





  근대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자의식을 안고 떠났을 첫 유학길. 

윤동주 시인이 입학했던 릿교 대학의 교정에 한참을 머물렀었다.

그리고 그가 하숙했던 하숙집 터(두 군데)에서 

시인이 썼던 '쉽게 씌어진 시', '사랑스런 추억'을 조용히 낭송했었다.


  시인이 살아있었다면... 그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었다면 

  그는 분명히 교단에 섰을 것이라고 나는 늘 믿어왔다. 

그리고 분명 섬세하고 세심하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상상을 하면 괜스레 든든한 선배가 함께 이 땅 어딘가에서 

이 땅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시와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든든하곤 했다.


  모든 존재는 필멸하지만... 어떤 아름다움은 지속적으로 누군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기도 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그러할 것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잠 못 드는 깊은 밤 창을 열면

저 너머 어딘가에서 그의 눈빛이 찰나 총총~ 반짝거릴 것만 같은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