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별에서 내가 반한 문장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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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이 운명을 달리한 이듬해
나는 국문학과 대학생이 되었다.
위 문장이 새겨진 ‘귀천’이라는 시와 시선집
무언가 적적하고 힘든 순간에 꼭 손이 가곤 했었다.
그의 흔적을 찾아 인사동의 찻집 ‘귀천(歸天)’을 들락날락 했던 시절
순한 당나귀의 눈을 껌벅이던, 목순옥 여사의 시인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곤 했다.
물론 지금도 인사동 골목 어딘가에 ‘귀천’은 있다.
다만, 시인이 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아내,
목순옥 여사 역시 ‘귀천’하셔서 안 계시다는 게 아쉬울 뿐.
그는 자신이 진정 하고싶은 문학의 길을 위해
돈의 풍요가 보장된, 서울대 상대(지금의 경영학과)를 중퇴했다.
그렇게 시를 쓰며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고,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독일 유학을 다녀온 친구 강빈구에게서 막걸리를 먹으며 받은(절대 구걸이 아니다)
푼돈 500원, 1000원 때문에 간첩단(동백림 사건)에 연류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행려병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동안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친구들에 의해 간행된 유고시집 『새』.
엄연히 살아있는,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는 유고집을 가진 사람은
전 세계역사상 천상병 이전에도 없었고 천상병 이후에도 없었다.
무엇을 꾸미거나 무엇하나 가릴 것이 없다는 듯
그렇기에 설명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한 그의 시를 읽는 밤.
그의 생은 가난과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되었지만,
온통 상처만 안겨준 모질고 험난한 세상을 따스하게 보듬었고
그렇게 아팠던 세상살이를 ‘소풍’이라 불렀다.
그의 의지대로 하늘에 간 그는
몇 개 빠진 앞니와 덧니를 내보이며
저승가는 데는 여비가 들지 않았다며 씩 웃으며
이승의 삶을 말하고 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