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때란 없다

이 별에서 내가 반한 문장

by 이창훈
스스로 하고자 했던 일을 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 조지 엘리엇 -




과분하게 내가 쓴 시를 아껴주시는, 교수님의 부름을 받아

분당의 한 문화센터에서 그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시창작 교실에

일 주일에 한 번씩 나간 적이 있었다.


일곱 분 정도가 교수님의 시강의를 들은 후

본인들이 들고 온 자작시들을 돌려 읽으며 합평회를 하는 시간이었다.

일곱 분 모두 환갑을 지나 칠순,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들이었다.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건

그 난해한 신춘문예 당선시에 대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그 분들의 진지하고 학구적인 태도, 본인들의 써 온 시에 대한 타인들의 말들을 경청하고 세세하게 기록하는 모습 등이었다.


국문과나 문창과에서 문학 수업이라곤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었을

먹고 살기 바빠 효율과 경쟁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세파의 흔적이 깊은 주름으로 패인 얼굴들. 그러나

해맑게 웃고 시를 나누는 모습은 누구보다 청년이며 싱그러운 아름다움이었다.


뒷풀이 자리에서 여든이 넘었으나 당당히 청년시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한 분께 물었다.

“시를 왜 쓰고 싶으세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있는 시들이 나도 모르게 좋았어.

일기장에 끄적끄적 거려보기도 했었지.

공대 가고 취업하고 애들낳고 수십 년이 흘러버렸지만,

이상하게 지금도 시집을 보면 그냥 좋은 거 있지. 맘이 괜스레 설레.

내가 쓰는 게 시인지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

시공부 하는 게 너무 재밌어. 여기 나와서 공부하고 남들 시 읽으면

나도 모르게 잘 쓰고 싶어져. 착하게 살고 싶어져.


흔히들 물리적인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실 하고자 하는 것들을 포기하며 살기 때문에

우리는 급속하게 늙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몸담은 이 세상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이런 저런 환경과 상황 속에서

본인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도록 끊임없이 다그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해야 하는 일들 속에서 늙어간다.


어쩌면 인생은 후회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팔팔한 20대, 30대든

중년의 40대, 50대든

예순이 되고 칠순, 팔순이 되든

‘그 때 왜 나는 시작하지 못했을까?

그 때 시작했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텐데...’라는

후회는 평생을 따라붙는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후회를 하는 순간에

어떤 이는 늦지 않았다며 그 일을 시작한다.


문화센터의 나이든 시창작 학생들을 보며 확신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사진출처]: Pixabay 무료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