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범한 지붕이 누군가의 따뜻한 아랫목이 되고

[#28. 관계에세이 사이하다 | 다리와 날개사이]


날고 싶다, 고 생각한 적 있었다.

땅이 아닌 구름을 걷고 싶다,고 꿈꾼 적 있었다.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이

단단하고 먹먹하기만한 고체가 아닌

부드럽고 가녀린 공기였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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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두 다리가

한없이 볼품없게 느껴졌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걷기만 해선,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그 어떤 곳에도 닿을 수 없을 지 몰라


세상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빨리 흐르고

오늘과 내일은 잠시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을만큼

순식간에 달아나 버릴테니까


그렇게 나는 종종 내가 가진 속도를 탓하며

한편으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땅과 하늘의 거리를

무심하다 여기곤 했었다.


불만이 커질수록,

고개는 점점 아래를 향했고,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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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해 겨울,

흩뿌려지는 첫 눈 속에서 보았다.


한 없이 우아한 몸짓으로

공기를 가르며 춤추던 싸락눈이

지상의 무언가에 닿자 마자

속절없이 녹아버리는 모습을,


하늘에서는 차마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눈의 슬픈 두 발을

눈의 쓸쓸한 두 어깨를


지상의 빛을 만나

물방울이 되어

어디론가 흘러가버린

눈발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화려한 날개짓이라 생각했었던

눈의 비행은

어쩌면 너무나도 절박한 발짓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애초부터

그 어떤 빛나는 날개도,

그 어떤 누추한 두 다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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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온 몸을 다 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고

죽을 힘을 다 해 싸워도

되 돌릴 수 없는 것이 있고

아무리 서둘러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너무나 서럽지만,

그토록 진솔한

이 명제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나에게는 평범한 지붕인 것이

누군가에겐 따뜻한 아랫목이 되고

나에게는 지루한 두 다리가

누군가에겐 부드러운 날개가 될 수 있음을

믿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딛고 서 있는 땅이

지구 반대 편에선 푹신한 하늘이 되고,

말랑하기만 해 보이는 하늘이

그 어떤 이의 꿈 속에선

든든한 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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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느긋하게 흩날리는 눈이

급하게 몰아치는 비를,


서두르는 비 역시

여유를 부리는 눈을,

단 한 번 부러워한 적 없었듯이,


그렇게

가장 나 다운 몸짓으로

가장 나 다운 발짓으로

시간의 레일을 따라가고자

마음먹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더 빠른 것을 원하고

더 쉬운 것을 갈망하는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속도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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