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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Sep 20. 2024

5화: 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5화: 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그날은 사고가 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입원 이후 지속되는 울렁거림과

불면증으로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던 시간들


어김없이 지독한

울렁거림을 버티며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님
저 토할 것 같아 미치겠어요
뭐라도 좀 놔주세요.

간호사는 익숙한 듯 내 자리로 와

정맥 주사의 상태를 살폈다.


구토억제제 놔드릴게요
잠시만요

그렇게 평소처럼 구토억제제를

맞고 잠이 드나 싶었는데

뭔가 평소와 다른 몸의 감각이

심상치 않았다.


정맥을 통해 주사 형식으로

받아들이는 구토억제제는

임산부들이나 어린아이들에게도

잘 처방될 만큼 부작용이 덜하고

안정성이 확보된 것이라 들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주사액이

내 몸에 흡수 되지 못하고

혈관을 타고 내 온 몸을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구토억제제를 수액처럼

맞으면 맞자마자 30분 안에

마법처럼 속 울렁거림이 사라졌었는데

30분이 지난 이후에도

뭔가, 알 수 없는 액체가

내 온 몸을 돌아다니는 듯한

굉장히 기분나쁘고 불편한

기분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이상한 기분은

강해져 심장 쪽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것이 돌아다니는 곳마다 화끈거림이 동반됐다.

화상을 입지도 않았는데 온 몸이 불에 타고 있는

듯한 작열감.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내 팔 다리와 심장을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듯한

괴상하고 불편한 이 이상 감각은

나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새벽12시,

더이상 참을 수 없던 나는

다급히 간호사를 다시 불렀다.


간호사님. 저 좀 이상해요
구토억제제 맞은 뒤로 뭔가가
제 몸을 훑고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뜨거워요.
불에 타고 있는 것처럼

간호사는 이 약은

평소에도 내가 곧잘

어떤 이상 없이 잘 맞았던 주사라고 했다.

갑자기 이런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저도 알아요. 근데 이상해요.
구토억제제를 맞은 뒤로
제 팔다리가 화상 입은 것처럼 뜨겁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 같아요

그래요?
체온이랑 혈압 한 번 재볼게요
어? 근데 혈압이 높네요.
갑자기 무슨 일이지..?


고대 안산병원으로 전원하고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맞았던 주사인데…

갑자기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다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심장 쪽으로 열기가 퍼지자

작열감으로 인해 몸 온도가 올라갔다.

분명 방 안 온도는 쾌적하리만큼

시원했지만 나는 너무나 더워 옷을 입고

있을 수 조차 없었다.


윗옷의 단추를 풀어헤쳐도

열기는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진행했던 처치,

하지만 갑자기 닥친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

간호사도 나도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새벽 타임 간호사는

하필 나의 담당 간호사가 아니어서 더욱 난감했다)



새벽 2시가 이미 넘은 시각

나는 온 몸에 돌아다니는 이 열기를

어서 빨리 잠재우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


잠에 들면 좀 나을까 하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수면놀람증 증세 역시 심해져

정말이지 단 1분도 잘 수 없었다.


뼈 뿌러진 것도 모자라

이런 기상천외한 병까지 생긴건가?

추웠다 더웠다 난리 부르스를 추는

이상체온증세까지 오자

오만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겠구나
평생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하면 어떡하지?


이게 말로만 듣던
약물 부작용인가?


왜 하필 그런 사고를 당해서
이런 통증까지 겪어야하나?
미쳐 돌아버리겠네...


이유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은 밤새 나의 불안을 키웠고

불안이 커질수록

골절 부위에 집중되었던 통증 부위는

불길처럼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졌다.



그렇게 단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간호사 교대 근무 시간인 아침 7시가 되었다.

밤새 두려움과 슬픔, 억울함과 서러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떠느라

내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침 교대를 한 나의 담당 간호사가

새벽녘에 일어난 일을 듣고 부랴부랴

내 자리를 찾아와 물었다.


간 밤에 얘기 들었어요.
지금은 어떠세요?

비슷해요. 너무 힘들어요.
온 몸이 불타는 것 같아요.
간호사님 저 어떻게 해요?
혹시 약물 부작용일까요?

지금까지 잘 맞아오셨던
주사이기도 하고
아시다시피 부작용이 알려지지 않은
안전한 주사 중 하나가
구토억제제인데
그걸로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 이유가 뭘까요?
저 너무 무서워요.
혹시 시간 되실 때 앉아있거나
좀 걸어보시긴 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저번 회진 때
보조기만 잘 착용하면
슬슬 앉아보거나 걸어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씀 하셨던 것 같은데?

아니요. 두려워서 차마
시도를 못했어요
사고 난 이후로 계속 줄곧
누워만 있었잖아요.
그래서인지 밥 먹을 때 살짝 베드를
올려서 먹을 때도 어지럼증이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조금만 상체를 세워도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일주일째
누워만 있었던 거에요?

네….
너무 힘드셨겠다. 몸도 마음도...
젊은 사람이 여기서 일주일간
잠도 못자고 누워서만 지내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제가 봤을 땐… 주사 때문이라기보다..
마음의 문제인 것 같아요.


마음이요?


새벽 내내 내 몸의

구조적 이상을 걱정했었던 나는

예상치 못한 담당간호사의 대답에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래... 그럴만도 했겠다 싶었다.


너무나 갑자기 닥친 사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하는 현실

사지를 죄여오는 보조기 착용
불면과 위장장애...

타인의 도움 없이는 단 1초도

살아가기 힘든 일상....


친구들 사이에서 '방길동'이냐

말을 들었을 정도로

활발한 사회생활과

커리어 활동을 했던 나에게

이러한 현실은

형용할 수도 없을 큰 정신적 충격과

고통으로 다가왔으리라...


그제서야 내가 겪은 사고의

여파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마음이 지금 너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환자분 혹시 괜찮으시면
정신과 협진도 가능하시니 말씀 주세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깐요.
교수님과 상의 후 요청드릴게요.

그리고...
 오늘부터 저랑 당장 걸읍시다!!

네 ? 오늘부터요? 당장요?


저 90도로 앉아 있어본 적도
없는데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에게

담당 간호사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부터 하면 되요.
못할 거 없어요
교수님께도 제가
다시 한 번 여쭤볼게요.


자리를 잠시 비운 간호사가 다시

나의 자리로 와 말했다.


걸어보시래요.
교수님께서도
허락하셨어요.
그런데 앉거나 서면
뼈 붙는데
안 좋지 않을까요?”
무리하면 그렇지만, 지금은
살짝 살짝 시도해보는 거잖아요.
그건 교수님께서도 허락하신거고
계속 이렇게 누워만 계시면
앞으로 얼마다 더한 증상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힘드시더라도
조금씩 걸으면서 보조기 생활도
같이 하셔야 일상으로의
회복이 빨라질겁니다.
아 참, 참고로 환자분!
저도 지금 골절상태에요!!

네? 간호사님도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담당 간호사의 골밍아웃?

겉으로 보기에는

골절환자라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네. 저도 지금 꼬리뼈
골절 상태인데, 그냥 일해요.
저도 환자분과 같은 교수님께
진료 받았어요.
뼈는 어차피 시간 가면
붙게 되어있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상 생활하라고 들어서
저도 지금 그러고 있는걸요?

알고보니 그녀는

신경외과에서만 12년을 근무한

베테랑이었고 최근

낙상사고로 꼬리뼈 골절 진단을 받은 채

나와 같이 자연유합을 기다리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나를 포함해 그녀가 경험한

골절환자는 손에 꼽을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겁나서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환자도

아픔을 참으면서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며 회복하는 환자도

모두 다 만나 보았다 했다.


골절 환자인 그녀가 12년간의

근무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초창기부터 조금씩 운동도 하고

일상을 가져가야

나중에 뼈가 다 붙고 나서도

회복이 더 빠르다는 것

그래서 자신 역시도

자신이 만나온 환자들과 함께

같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 환자분 걱정말고
나랑 같이 용기내요!


저… 다시 걸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내친 김에 지금 걸어볼까요?


사고 난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오로지

천장에 붙은 형광등 뿐이었다.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직립보행의 생활…

먼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일이 지금 나에게 벌어지려는 걸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자 천천히 몸 일으켜볼게요.

담당간호사의 말을 들으니

어쩌면 꿈이라고 생각했던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예전으로의 회복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한 번 똑바로 세상을 보고 싶어!


잠시만요!
저 스스로 일어나볼게요!


그렇게 사고 이후 처음,

줄곧 마음 깊숙히

두려움으로 덮여있었던

용기라는 단어가 내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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