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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Oct 02. 2024

6화: 삶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어



나와 같은 경추 골절환자는

목에 부담이 갈 수 있는

일체의 행동도 허락되지 않는다.


다치기전에 무심코 했던

모든 행동들은 사고 이후

금지되거나 제약을 받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도

예전처럼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킬 수 없다.


반드시 환자의 기립을 도와주는

병원용 침대가 필요하다.


사고 이후 일주일 간 단 한 번도

똑바로 앉거나 서 있어본 적 없었던 나는

자동 기립 침대의 도움을 받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순간, 어마무시한 어지럼증이

나를 덮쳤다.



세상이 뱅글뱅글 돈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던가.


간호사님, 저 너무 어지러워요


원래 오래 누워계시다
일어나시면 그래요.
그걸 이겨내셔야 해요.
적응되면 사라질 거예요.


가까스로 어지럼증을 견디며

일어나야지, 마음을 먹는 순간

두려움이 내 앞을 또 가로막았다.


근데...머리를 ... 못 떼겠어요


사고 이 후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고,

똑바로 앉아본 적도 없었던 나에게

걷는 것보다 시급했던 과제는

머리를 똑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목뼈가 부러진 이후

내가 느낀 가장 큰 몸의 변화는

머리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었는데,


정말 이건 목뼈가 부러진 사람이

아니고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느낌이자 고통이다.


다치기 전엔 머리를 세우는 것도

당연했고, 머리를 세운 채 걷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다치고 난 이후의 나에겐

머리를 세우고 있는다는 행위는

세상의 모든 무게를 다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부담과

같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목뼈가 부러져 금방이고

내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져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랄까.


(이미 목뼈가 부러진 상황에서

'목뼈가 부러질 것 같은

통증과 불안감이라니...

정말로 아이러니하고

웃픈 느낌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막상 몸을 일으키고

머리를 침대에서 떼려니


사고 당시에 느꼈던

무시무시한 머리 무게의 충격

그 충격이 되살아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내 몸을 감쌌다.


괜찮아요. 보조기 착용했으니
믿고 힘을 내봐요.
자 나를 따라 하나 둘 셋 하면
머리를 떼 보는 겁니다.
자, 하나 둘 셋!



지금도 침대에서 머리를

처음으로 뗀 그날

느꼈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누워서만 바라보던 모든 사물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 그날


사고가 난 직후부터

줄곧 누워서 구급차로만

이동했던 나는


내가 호송된 병원이 어떤 곳인지

내가 누워 있는 병실이 어떤 모습인지

내가 어떤 길을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침대에서 머리를 뗀 그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저 하나의

신비로운 세계처럼 느껴졌다.


자, 이제 몸을 세웠으니 다리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볼까요?"
하나 둘 셋 하면 허벅지에 힘을 주고
일어나는 겁니다. 자 하나 둘 셋!


일주일간 누워서만 지냈기에

팔다리의 모든 근육이 다 빠져

힘이 없었던 나는 그 순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일어섰다.


사고 7일 만에 이뤄낸 직립보행이었다.


섰어요!!! 간호사님 저 일어섰어요!!


맞아요. 환자분 잘하셨어요.
이제 살살 걸어볼까요?"


너무 어지럽거나 힘들면 조금만 하고
쉬어도 되요. 너무 무리하진 말고요


목을 처음 세운 그 순간의 감동을

1이라고 친다면

두 발로 땅을 딛으며 병동 복도를

처음 돌아본 가슴벅참은

10 그 이상의 감동이었다.


내 두 다리로

중력을 견디는 느낌이 이렇게

신선했던가?


마치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나는 다소 엉성한 걸음걸이로

꼬꾸라져버릴 것 같은 두 다리의

후들거림과 어지럼증을 견디며

한발자국 한발자국

발걸음을 내딛어 갔다.


목과 뒷통수 어깨를 관통하는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참고 또 참았다.

너무나도 힘들게 얻어 낸

기회 아닌가.


힘겹게 얻어낸 얻어낸 기회인만큼

세상을 내 눈으로 오래 오래

보고 싶었다.



그렇게 병동을 돌다

병동 중간에 위치한 창문 앞에서

늦은 봄바람에 살랑살랑

몸을 움직이는 나무를 봤다.


순간, 울음이 터졌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냥 모든 것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가볍게 부는 봄바람도

그 봄바람에 몸을 흔드는 나무도

따스한 햇빛도

햇빛에 빛나는 나뭇잎도

그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흘러가는 시간들

그 일상 하루하루가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세요....이렇게 좋은 날에


너무 예뻐서요. 진짜 너무 아름다워서요.


세상은 사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다.


다치지 않았다면

그날 울릉도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깨달을 수 없었을

미치도록 평범한 이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온 몸 가득 느끼며

생각했다.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이 수면장애도

끼니마다 나를 힘들게하는 울렁거림도

온 몸이 불타는 듯한 이상감각도 어쩌면

이 벅차오르는 아름다움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세상이 이다지도 아름답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으니

나는 더욱 살아야하고

앞으로도 살고 싶다고


그러니, 버텨야한다.

울고 싶고 힘든 것이 있거든

살고난 이후에 하자.

그러자 수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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