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일어나 걸은 지
3주가 되던 날,
난 처음으로 머리를 감았다.
내가 24시간 착용하는
미네르바 보조기는 쇠와 면으로
구성되어 있어 물에 닿으면
망가질 수 있기에
미네르바 대신
물에 젖지 않고 쉽게 마르며
원상복구능력이 뛰어난
필라델피아 보조기를 사용해
씻어야 했다.
올해 초 첫 아가를 보내고
유산을 했을 당시에도
친정엄마의 극성으로
전통방식 그대로 몸조리를 하느라
2주간 머리를 감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정말 머리가 많이 간지럽고
힘들었었는데, 3주가 넘어가니 불쾌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그랬던 내가 3주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을 때 느낌
그 감동은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
불쾌감이 사라져서 개운하다는 마음보다
이렇게 내 두 발로 서서
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일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디 작은 희망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울릉도에서 안산으로
비환자에서 골절환자로 바뀐 채
4주를 보낸 이후
나는 한 달간의 경과를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ct를 찍었다.
처음 고대 안산병원으로 이동했을 때
진단 받았던 치료 기간은 최소 전치 8주
태어나서 교통사고도
한 번 당한 적 없고
골절 한 번 겪어본 적 없는 나였기에
제 아무리 큰 사고라 할지라도
기껏해야 두 세 달이면 붙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믿으며 열심히 한달 간
정말 열심히도 먹고
열심히도 걷고
열심히도 쉬었다.
남편도 나도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했었기에
Ct 결과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2차병원으로의 전원을 앞두고
전달받은 ct 결과는 참혹했다….
자, 한번 영상을 볼게요.
이게 사고 난 지 한 달 된
어제 찍은 CT 영상이거든요?
같이 한 번 볼게요
음….
혹시…선생님 뭐가 잘못 됐나요?
잘못된 건 아니고
한달 전 이송됐을 당시랑
뭐 큰 차이가 없네요
부러진 곳도 그대로고
뼈 위치도 그렇고요”
한 달이나 지났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요?
네. 지금 상태로선 그래요,
자세한 건 영상의학과 교수님의
판독지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태로선, 그렇게 보입니다.
선생님.. 그럼 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제 한달 밖에 안됐으니깐,
좀 더 기다려보죠.
우선 2차 병원으로 전원 준비하시고
한달 뒤 다시 외래오셔서
Ct 찍어봅시다
의학적으로 본다면
통상적으로 뼈가 붙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8주이다.
만약, 그 의학적 소견이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이라면
미세하게나마 뼈 유합이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8주에서 절반이 넘어간
골절 5주차인 지금
아무런 뼈에 변화가 없다니?
담당교수님은 말을 아끼셨지만,
미루어 지잠할 수 있었다.
나는 통상적인 의학적 소견에
따라 회복되는 몸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회복시간을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일지도…
과연 내 뼈는 자연유합으로
붙을 수 있는 것일까?
자연유합이 되지 않으면 결국
수술을 택할 수 밖에 없는데…
수술을 택하기엔 나의 골절부위는
너무나 위험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이 위태로워질수도
신경손상을 일으켜 마비가 올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수술은 피해야하는데…
순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적어도 내 뼈가 붙기 시작했다는
자그마한 단서라도 듣고
여기를 떠나고 싶었는데…
뼈가 붙기만 한다면야
완전회복까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버텨보겠지만
아무런 변화의 시그널도 받지 못한 채
타병원으로의 전원이라니….
너무나도 가혹한 것 아닌가.
뭔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려나 보다,,,
서늘하고 기분 나쁜 조짐이
내 간담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앞으로 펼쳐질
긴 고난의 시간을
예감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