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경과 없이
집과 가까운 한방병원으로
전원하게 된 나
전원한 뒤 나의 병실 생활은
전보다 다소 바빠지고
많이 달라졌다.
규칙적인 식사시간이 생겼고,
하루에 두 번, 한방침을 맞는다는
고정 스케쥴이 생겼다.
밥을 먹고 나서는 한 시간씩 산책을 했다.
아침 저녁으로 한약도 빼지 않고 먹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 스케쥴을 다 소화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환자가 편히 쉬어야지
그렇게 바쁘면 쓰나?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뼈가 붙을지 안 붙을지 알 수 없는
나와 같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는
어찌보면 내면의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잠재워줄 수 있는
묘약처럼 느껴졌다.
스케쥴을 해치우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어있었으니 말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옛말이
떠올라 피식 혼자서 어이없는
웃음을 짓기도 했다.
내가 배정받은 병실은
병동의 정중앙 끝에 위치해
소음을 피하기 좋다.
유일하게 창문이 있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따뜻한 온기나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전원한 후
무엇보다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건
새로 사귄 친구 때문이었다.
나의 병실과 가장 가깝게 위치한
소심이 아주머니 이야기다.
체격도 아담하고 목소리도 나긋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겁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소개하셔서 소심이 아주머니라고
기억해두기로 했다.
아주머니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와 함께 부부가 동승한 채
교통사고가 났고
허리쪽 척추가 와르르
부서져버린 상태라고 했다.
같은 교통사고 환자이고,
그리고 대학병원에서 비슷한 시기에
전원을 했다는 공통점 덕분인지
35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소심이 아주머니와 나는 금방
병동의 절친이 되었다.
하루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병실생활에
하루 일과를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스케쥴에
푸념하듯 하루는 내가 말했다.
매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그렇죠? 나도 그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니까
이 말을 옆에서 들은 아저씨께서
허허허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한마디 훈수를 두셨다.
아니, 그럼 그게 환자의 일이지
뭐시 중요하당가?
잘 먹고 잘 쉬고 그게 환자가
할 일이여. 아주 잘하고 있는겨!
아주머니와 내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고 꺄르르 웃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료하게, 무의미하게
보이는 하루하루가
환자인 나에겐 정말 치열한
삶의 흔적일 수 일지 모른다.
나는 지금 환자의 일을 하고 있다.
환자의 일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