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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Oct 23. 2024

9화: 감사기도를 올리세요

세상에 뼈 붙는 약 같은 건 없습니다
시간이 약이에요
보조기 잘 차고 한 달 뒤에 봅시다

사고가 난 지 한 달

나는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하에

대학병원에서 2차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조금이라도 잘못 되면

사지 마비가 올 수 있는

위험한 경추골절환자였던 나는


‘반드시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해야한다’

는 담당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그에 맞는 2차 병원을 찾아야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지시에 딱 맞으면서도

거주지와 가까운 전원할 병원을

고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나 힘든 숙제였다.


우선, 수술하지 않은 골절환자를

입원으로 받아주는 척추전문병원은

거의 없었다.



의료대란이라는 이슈도 작용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입원할 수 있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되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이

“수술 하셨나요?” 였고


수술하지 않아 받아줄 수 없다는

대답을 수차례 받은 후

집 근처 한방병원이라도 가겠다는

마음으로 수소문했지만

그 곳엔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가량을 수소문 한 끝에

기적처럼 집 근처 한 한방병원에

신경외과 전문의가

상주 진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남편에게 전원 전에

미리 해당 병원 답사를 시킨 후

신경외과 전문의 선생님을 꼭 만나뵙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해당 한방병원을 방문해

신경외과 전문의를 만나게 된 날

남편은 ‘선생님을 만났다’며

병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60-70세는 되어보이는

중후한 목소리의 선생님께서

전화를 건네 받으셨다.


여보세요
00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000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혹시 제 남편으로부터 제 상황 설명을
들으셨는지요?


네 들었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혹시… 저 같은 케이스 환자도
많이 접해 보셨는지요? 
사실 지금 너무 겁납니다.
갑자기 벌어진 사고에
목뼈 골절까지… 그래서 여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릴게요.
제가 신경외과 전문의로
40년 살았지만
환자분 같은 케이스는
단 5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건 저처럼 개인 병원 의사로 살았던
대학병원 의사로 살았던
마찬가지일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이렇게 다치면 대개는
죽거나 사지 마비가 되어서
저에게 오지요.
환자분처럼 멀쩡히 살아서
두발로 걸어오는 경우는 없어요.
이건 천운이에요
로또 보다 더 한 확률입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무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를 원망하지도 마세요.
아침에 일어나 벽을 보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세번씩 감사 기도를 드리세요.
그게 환자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 방법입니다.
뼈도 그렇게 마음 먹어야 빨리 붙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쪽 병원으로 내일 바로 전원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경외과 전문의의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전원을 하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고자 했던 길이

나를 명의로 이끌었다는 확신(?)이 들었달까



한 달만의 CT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나는

이미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

꽤나 길고 먼

고난의 장기레이스가 될 것이란 것을…


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신경외과 전문의 그 이상의,

무엇보다 나에게 페이스 조절을

해 줄 수 있는 마인드 코치가 필요했다.


선생님의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어쩌면 이 분이 앞으로의 레이스를

함께 헤쳐나갈 나의 코치가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7월 8일 월요일

햇살이 아주 좋은 날 아침

나는 다시 한 번 구급차를 타고

서울시에 위치한 한

2차 병원으로 전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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