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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감사기도를 올리세요

세상에 뼈 붙는 약 같은 건 없습니다
시간이 약이에요
보조기 잘 차고 한 달 뒤에 봅시다

사고가 난 지 한 달

나는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하에

대학병원에서 2차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조금이라도 잘못 되면

사지 마비가 올 수 있는

위험한 경추골절환자였던 나는


‘반드시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해야한다’

는 담당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그에 맞는 2차 병원을 찾아야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지시에 딱 맞으면서도

거주지와 가까운 전원할 병원을

고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나 힘든 숙제였다.


우선, 수술하지 않은 골절환자를

입원으로 받아주는 척추전문병원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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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이라는 이슈도 작용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입원할 수 있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되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이

“수술 하셨나요?” 였고


수술하지 않아 받아줄 수 없다는

대답을 수차례 받은 후

집 근처 한방병원이라도 가겠다는

마음으로 수소문했지만

그 곳엔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가량을 수소문 한 끝에

기적처럼 집 근처 한 한방병원에

신경외과 전문의가

상주 진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남편에게 전원 전에

미리 해당 병원 답사를 시킨 후

신경외과 전문의 선생님을 꼭 만나뵙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해당 한방병원을 방문해

신경외과 전문의를 만나게 된 날

남편은 ‘선생님을 만났다’며

병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60-70세는 되어보이는

중후한 목소리의 선생님께서

전화를 건네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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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00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000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혹시 제 남편으로부터 제 상황 설명을
들으셨는지요?


네 들었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혹시… 저 같은 케이스 환자도
많이 접해 보셨는지요?
사실 지금 너무 겁납니다.
갑자기 벌어진 사고에
목뼈 골절까지… 그래서 여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릴게요.
제가 신경외과 전문의로
40년 살았지만
환자분 같은 케이스는
단 5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건 저처럼 개인 병원 의사로 살았던
대학병원 의사로 살았던
마찬가지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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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이렇게 다치면 대개는
죽거나 사지 마비가 되어서
저에게 오지요.
환자분처럼 멀쩡히 살아서
두발로 걸어오는 경우는 없어요.
이건 천운이에요
로또 보다 더 한 확률입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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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를 원망하지도 마세요.
아침에 일어나 벽을 보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세번씩 감사 기도를 드리세요.
그게 환자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 방법입니다.
뼈도 그렇게 마음 먹어야 빨리 붙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쪽 병원으로 내일 바로 전원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경외과 전문의의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전원을 하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고자 했던 길이

나를 명의로 이끌었다는 확신(?)이 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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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의 CT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나는

이미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

꽤나 길고 먼

고난의 장기레이스가 될 것이란 것을…


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신경외과 전문의 그 이상의,

무엇보다 나에게 페이스 조절을

해 줄 수 있는 마인드 코치가 필요했다.


선생님의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어쩌면 이 분이 앞으로의 레이스를

함께 헤쳐나갈 나의 코치가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7월 8일 월요일

햇살이 아주 좋은 날 아침

나는 다시 한 번 구급차를 타고

서울시에 위치한 한

2차 병원으로 전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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