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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Oct 16. 2024

8화: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병상에서 일어나 걸은 지

3주가 되던 날,

난 처음으로 머리를 감았다.


내가 24시간 착용하는

미네르바 보조기는 쇠와 면으로

구성되어 있어 물에 닿으면

망가질 수 있기에


미네르바 대신

물에 젖지 않고 쉽게 마르며

원상복구능력이 뛰어난

필라델피아 보조기를 사용해

씻어야 했다.



올해 초 첫 아가를 보내고

유산을 했을 당시에도

친정엄마의 극성으로

전통방식 그대로 몸조리를 하느라

2주간 머리를 감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정말 머리가 많이 간지럽고

힘들었었는데, 3주가 넘어가니 불쾌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그랬던 내가 3주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을 때 느낌

그 감동은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


불쾌감이 사라져서 개운하다는 마음보다

이렇게 내 두 발로 서서

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일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디 작은 희망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울릉도에서 안산으로

비환자에서 골절환자로 바뀐 채

4주를 보낸 이후

나는 한 달간의 경과를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ct를 찍었다.


처음 고대 안산병원으로 이동했을 때

진단 받았던 치료 기간은 최소 전치 8주


태어나서 교통사고도

한 번 당한 적 없고

골절 한 번 겪어본 적 없는 나였기에

제 아무리 큰 사고라 할지라도

기껏해야 두 세 달이면 붙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믿으며 열심히 한달 간

정말 열심히도 먹고

열심히도 걷고

열심히도 쉬었다.


남편도 나도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했었기에

Ct 결과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2차병원으로의 전원을 앞두고

전달받은 ct 결과는 참혹했다….


 

자, 한번 영상을 볼게요.
이게 사고 난 지 한 달 된
어제 찍은 CT 영상이거든요?
같이 한 번 볼게요

음….


혹시…선생님 뭐가 잘못 됐나요?

잘못된 건 아니고
한달 전 이송됐을 당시랑
뭐 큰 차이가 없네요
부러진 곳도 그대로고
뼈 위치도 그렇고요”

한 달이나 지났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요?

네. 지금 상태로선 그래요,
자세한 건 영상의학과 교수님의
판독지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태로선, 그렇게 보입니다.

선생님.. 그럼 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제 한달 밖에 안됐으니깐,
좀 더 기다려보죠.
우선 2차 병원으로 전원 준비하시고
한달 뒤 다시 외래오셔서
Ct 찍어봅시다

의학적으로 본다면

통상적으로 뼈가 붙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8주이다.


만약, 그 의학적 소견이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이라면

미세하게나마 뼈 유합이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8주에서 절반이 넘어간

골절 5주차인 지금

아무런 뼈에 변화가 없다니?


담당교수님은 말을 아끼셨지만,

미루어 지잠할 수 있었다.


나는 통상적인 의학적 소견에

따라 회복되는 몸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회복시간을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일지도…


과연 내 뼈는 자연유합으로

붙을 수 있는 것일까?


자연유합이 되지 않으면 결국

수술을 택할 수 밖에 없는데…


수술을 택하기엔 나의 골절부위는

너무나 위험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이 위태로워질수도

신경손상을 일으켜 마비가 올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수술은 피해야하는데…



순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적어도 내 뼈가 붙기 시작했다는

자그마한 단서라도 듣고

여기를 떠나고 싶었는데…


뼈가 붙기만 한다면야

완전회복까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버텨보겠지만


아무런 변화의 시그널도 받지 못한 채

타병원으로의 전원이라니….


너무나도 가혹한 것 아닌가.


뭔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려나 보다,,,


서늘하고 기분 나쁜 조짐이

내 간담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앞으로 펼쳐질

긴 고난의 시간을

예감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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