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 아주머니 맞은편 병실에는
언제나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는
또 다른 나의 친구가 있었다.
낙상 사고로 고관절 수술을 하고
3개월째 병원 생활 중인
화곡동 아주머니
우리는 매 끼니 식사 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식사 후 한 시간씩 병원 복도를
함께 돌았다.
복도를 돌며 시선이 마주칠 때면
어김없이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충청도 출신의 화곡동 아주머니와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산책 시간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목이 부러졌지만
다리는 멀쩡했고
그녀는 목은 그대로였고
골반뼈가 부러졌으니
산책의 속도가 차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복도 한 바퀴를 돌 동안
나는 복도 세 바퀴를 걸었다.
아니, 총알택시여~ 뭐여
하하하... 저는 다리는 멀쩡하잖아유
빨리 빨리 가서 뭐하게?
이렇게라도 좀 돌아야 속이 뚫려유
빨리가서 뭐할 것이여.
천천히 가야지
그 순간, 망치로 맞은 듯
멍해지며 내 머릿 속을 숱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앞만 보고, 목표를 향해서
거침없이 달려왔었던
사고 직전의 내 모습이었다.
울릉도에서 그 일을 겪기 전까지의 나는
아주머니의 말처럼
정말 총알택시처럼 살았다.
매년 빠지지 않고 신년계획을 세웠고
매주 남들이 가는 곳, 먹는 음식
빠지지 않고 경험하고 싶었다.
매일 매일을 내일 당장 죽을사람처럼
열심히 바쁘게만 살았었다.
그렇게 빨리 가고자 했던 나의 삶에
이렇게 브레이크가 걸리자
비로소 스스로에게 되묻는 시간이 주어졌다.
과연 나는 정말로 빨리가고 있었을까?
빨리간 것이 맞았다면
그 빠름은 과연 무엇을 위함이었을까?
아주머니 말씀처럼
천천히 가도 무방한 삶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애초부터 빨리 간다고 생각했던
그 길에서 나는 단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프고 나서 깨닫는다.
정체 속에서 비로소 성장하는
나라는 인간이 있다.
회복의 과정 속에서 조금씩 발견한다.
캄캄한 밤 중에도 분명 어둠을 이기고
피어나는 꽃이 있다는 것을
능청스럽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뒤로하고
다시 병동 복도 산책길을 나서며 외쳤다.
그러게유, 뭐한다고 그렇게
빨리 달리기만 했을까유?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걸어볼까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