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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Oct 27. 2024

12화: 엄마, 나 살 수 있나봐

전원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병실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한방병원의 하루 루틴일과에

적응도 하며 지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걱정이 많았다.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보낸 지난 한 달...     

전원한 뒤 첫 CT, 즉 사고가 난 후 찍는

세 번째 CT날이 다가왔다.     


일반 교통수단으로는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안산행을 감행할 수 없어

안전한 구급차를  부르기로 했다.    


10시에 진행된 CT 촬영

11시에 예약된 외래진료를 보기 위해

대기 장소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을까요? 

그럴거예요. 걱정말아요.  
    
우선 교수님 말씀을 들어봐요


    


000님~     

호명을 듣자 마자

남편과 나는 손을 꼭 붙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참 CT영상을 들여다보던

교수님께서 운을 떼셨다.    

  

아직 큰 변화는 없네요 


‘아... 여전히... 아직도 그대로인건가’     


순간, 낙담하고 실망한 나의 표정이

남편에게 전해졌다.

남편은 내 손을 더 꼭 잡아주며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여기, 여기 살짝 생길려고 하네요.
 브릿지가 생기려고 해요 


CT 영상을 한참 들여다보던

교수님께서 뭔가를 발견하신 듯

부서진 경추 1번 부근의

한 지점을 계속 확대해보셨다.     


뼈가 붙어가는 과정을
브릿지라고 얘기합니다.
자세한 건 영상의학과 교수님께서 하신
판독지를 봐야 알겠지만
여기 아주 살짝 브릿지가
생기려고 노력중이네요   
  

골절로 갈라져 틈이 생긴 공간에

우리가 보기엔 보일 듯 말 듯 한

아주 희미한 무엇인가가 실타래같이

보이는 듯도 했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서는

기존의 영상과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인지

크게 와닿진 못했지만


어찌됐건, 확실한 것은     

‘아주, 미미하지만 사고가 난지

2달만에 드디어 무엇인가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이번 주 안으로 영상의학과 교수님
판독결과를 전화로 알려드릴겁니다.
우선 1달 뒤, 사진을 다시 한 번 찍어보시죠     

진료실을 빠져나온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뭔가 좋은 이야기를 듣고 온게 맞는건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다시 한시간 반 구급차를 타고

한방병원으로 돌아왔다.     



애가 타셨는지 아버지 어머니께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며

답을 재촉하셨지만     

아직 영상의학과 소견이 안나왔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답을 몇일 뒤로 미뤘다.

     

이틀 뒤, 여느날처럼

침치료를 받고 병상에 쉴겸 누워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직감적으로 이건 병원에서

온 전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000님 되시죠?
여기 고대 안산병원
신경외과입니다.
몇일 전 찍고 가신
 CT 촬영하신 거
영상의학과 판독지 나와서
설명드리려구요.
조금씩이지만 뼈
    잘 붙어가고 있답니다. 

   



뼈가 붙어가고 있다고요?
    
네~ 신경외과 교수님과
영상의학과 교수님
판독소견이 일치하신대요.
지금처럼 보조기 잘 끼고 계시다가
한달 뒤에 뵙자십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미친 듯이 울었다.

끄억끄억 울었다.

누가 죽었나? 의심이 될 정도로

정말 처절한 울음이었다.     

하지만, 그 울음은 내가 살 수 있다는

나 자신의 생존을 축하하는 울음이었다.

   

지난 몇 달 간 너무나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었으니까.     


내가 원했던 건 온전히 나의 힘으로

수술하지 않고도 뼈가 붙을 수 있다는

그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걸 이제야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은 것이다.     


다음날 신청한 의료사본을 통해

받아본 영상의학과 판독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Still not union, but ongoing osseous union     
아직 뼈가 온전히 붙진 않았으나, 골유합이 진행됨.     


본능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이제 살 수 있나봐.


엄마. 엄마. 나보고 살라고 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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