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란 어쩌면

#17.내가 쓰고 우리가 읽는 관계에세이 "사이하다"

# 이름이란

사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 곳에 불시착한 이후로

뱉어낸 말들 중에

가장 근사한 단어 일지도 모른다.


눈물나게 멋진 시 한편 일지도 모른다.


태어나자 마자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갖는

유일무이한 나의 것이건만,

누구에게도 줄 수 없고,

지우거나 없앨 수 없앨수도 없는

태초의'내 것'이것만,


내가 스스로 지어 부를 수 없다니,


어쩌면 살아생전 그 흔한 욕보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단 사과의 말보다

수백 배, 혹은 수천 배는 더 많이 듣게 되는

이 단어가 온전한 나의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름"과 동시에 태초의 "슬픔"을

배우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아픈 다리도 잊고,

저 멀리서 환하게 웃으며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올 때,


당신이 자꾸 구부러지는 글씨로

나의 이름을 가만히 가만히 써내려 갈 때,


나는 그 슬픔마저 흩어지게 하는

당신의 무한한 따뜻함을 본다.


그 아늑한 시선을 본다.


그 빛보다 반짝이는 손길을 본다.


어쩌면 나의 태어남은,

먼저 이 세상에 도착한 당신이 지어준 이름,

그 따뜻함을 만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의 탄생이 당신의 추억이 되고,

나의 유년이

당신의 사랑스러운 웃음이 되고

나의 현재가

당신을 비추는 훌륭한 렌즈가 될 때,


나의 이름은 비로소 슬픔을 넘어,

"이름이란 이름"을 버리고,

비로소 온전한

"이름이란 이름의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친구들의 놀림감이 된다는 이유로,

내가 스스로 짓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 때, 우리들의 이름은 자주 길을 잃고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사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이 곳에 불시착한 이후로

뱉어낸 말들 중에

가장 근사한 단어 일지도 모른다.


눈물나게 멋진

시 한편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신도 나도,

당신의 당신도,

나의 당신도,

이 이름 하나를 얻으러

그 따뜻함 하나를 품으려

이 별에 불시착 한 것일지 모른다.


당신은 떠났지만,

오늘도 나는

당신이 사라진 자리에서

당신이 건네준

따뜻함 하나를 꺼내 먹는다.


당신의 웃음과 함께

당신의 울음과 함께

당신의 기억과 함께 천천히 삼킨다.


당신이 그렇게 나의 "이름"을 지어주었듯이,


당신이 태초의 나를

이렇게 꼭 품에 안았듯이,


대답도 없는 나의 이름을

혼자서 자꾸만 자꾸만 되뇌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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