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방이다.

#18. [관계에세이 "사이하다"] | 방과 이불사이

방이 방다워야 맛이듯,

나도 나 다워야 맛이다.


어른들은 결국엔 모두 다 혼자다,

자신을 믿어야한다 말씀하시지만,

우리에겐 세상이 무너져도

곁을 묵묵히 지켜줄 존재 하나 있다.


스스로의 무능함을 탓하며

한 없이 우울해질 때도,

속절없이 시련만 죄다 갖다 주는 하늘을

욕하고 싶을 때도

묵묵히 우리를 받아주는 거룩한 성지.


한여름 날 좌우를 살피지 않고

마음껏 속옷을 던져버릴 수 있고,

최신 인기 댄스곡을 틀어놓고

밤새도록 헤드뱅잉을 해도 용납되는 공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단 한사람,

바로 "방"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의 거사도 모두

이 코딱지만한 방에서 이루어졌을 지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삼류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던 곳도 방,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살려내기 위해

매일 기도했던 곳도 방,

애인과 달콤한 첫키스를 한 것도

모두 이 "방"이었다.



20대 문턱에서 서른에 닿지 않기 위해

30대의 언저리에서 마흔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간도

우리네 지난 방들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다.

칠흙같은 밤, 노트북 모니터 커서와

우리의 눈동자만이 깜빡일 때도,

조용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방 한가득 춤을 출 때에도

우리 곁에는 항상 방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방"이라 부르면 귀보다 무릎이 먼저 반가워울 때 있다.

"방"이라 말하면 입보다 마음이 먼저 간지러운 적 있다.


하품과 눈물과 웃음과 슬픔이 뒤섞여

벽지가 된 방,

그 벽지가 갓 지은 밥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줌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온전히

나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백한다.

서툰 우리를 계속 걷게 만든건,

그 걸음의 여정 속에서

길목마다 꽃을 피우고

이정표를 세우게 만든 건,

8할이 방안 가득 메운 그 벽지의

시큰함 때문이었다.

그 달큰했던 이불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어쩌면

나의 방을 가진다는 것은

가장 나다워진다는 말과 같다.


방이 방다워야 맛이듯,

나도 나다워야 맛일 테니까.


房子要舒服一点才叫房子 ,

自己要自在一点才是自己.


그리하여, 오늘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대신


수줍은 목소리로

‘나의 방이 되어달라' 말할 것이다.


그러니,

혹시나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당신이 나의 방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당황해하거나 슬퍼하지말라.


오히려 그가 부끄러움에 줄행랑치기 전에

내 옆에 꽁꽁 붙들어 매두어두어라.


목욕탕만큼이나

내 몸 구석구석 떼를 잘 알고 있고

더럽고 히스테릭한 내 성질머리를

엄마아빠만큼 잘 알고 있는,


그런 내가 온전히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하나가

요 코딱지 만 한 내 "방" 뿐인데.


그 방에 당신을 들이겠다지 않는가.


심지어 그 방이 되어달라지 않는가.


그래 이건 사실, 엄청난 고백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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