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빠져든 순간,당신을 사랑한 시간

#21. [종교와 철학사이]

한 때,

당신이 나의 종교라 생각한 적 있었다.


나의 눈동자 안에서

당신은 한 없이 높고 푸르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당신의 웃음은 종종 나의 길 잃은 울음을 덮어주었고,

당신의 손길은 자주 힘 없이 떨리던 내 두 심장을

소리없이 재워주곤 했었다.



그렇게, 당신은


몸을 비틀거릴 때마다,

중심을 잃을 때마다,

방향을 잡지 못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상비약 같았다.


마치 내 몸 정중앙에 자리한 배꼽처럼,

굳건할 거라 믿었다.

떼어낼 수도, 떠나갈 수도 없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당신의 입가에서 조금씩

나의 울음을 덮어 줄 미소가 사라지고,


당신의 손끝에서 더 이상

그 어떤 온기도 느낄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두 손을 뻗어 찾으면 찾으려 할 수록

더욱 더 흐려지는 당신을 발견했을 때,


너무나도 가벼워져

슬쩍 흘리는 나의 기침 한 번으로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당신을 보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당신은 나의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 되길 원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당신을 믿기보다, 이해하기를 바랐고

당신을 의지하기 보다, 당신과 함께하기를 바랐으며

당신에게 감사해하기 보다, 당신을 나란히 걷기를 바랐다.


당신을 통해 지침과 힘듦을 잊기보다

지침과 힘듦 속에서도 당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고,

당신을 통해 세상을 살아나가는 모습이 아닌,

나의 세상 속에 당신이 채색되는 순간들을 바랐다.


그렇게 당신을 통해


당신도, 그 누구도 아닌,


온전한 나를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당신에게 빠져든 순간은

종교같았다 할 지라도,


당신을 사랑한 시간만큼은

철학으로 기억되기를.


그리하여,


당신이 떠나간 자리에도

꽃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피어날 것이고,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도

내 삶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울 것이란,


그 지루하고도 소중한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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