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꽃이 피었다.

[#24.관계에세이 사이하다] | [노을과 저녁사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저녁은 온다.


마치 다른 길은 찾을 수 없었다는 듯

더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다는 듯

그렇게 저녁은

우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다.


저녁의 두 발은

항상 축축히 젖어있었다.


저녁이 지가가는 자리마다

붉고 또 노란 꽃들이 피었다.


꽃들은 피자 마자 흐드러지더니

이내 사방을 하염없이 물들이곤 했다.


하지만,


낮이 사라지고도,

물든 하늘은 오랫동안 낮의 기억을

보듬어주고 있었다.


빛이 사라지고도,

저녁의 젖은 두 발은 한참동안 빛의 감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떠난 자리에

노을이 춤추고 있었다.


추억이 사라진 자리에

노을이 제 몸 터트려가며 물들고 있었다.



하루가 저물어간다는 것이,


누군가 떠나간다는 것이,


끝을 마주한다는 것이,


마냥 슬퍼할 일 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어쩌면

세상 모든 것들의

뒷모습이
저녁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거부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어,

저녁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노을의 단 한번의 붓질을 보기 위해

그토록 수많은 뒷모습들을

마주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분주하고 정신없었던 행복이

제 날개짓을 접고

어디론가 떠나려던 순간에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당신의 아름다운 춤사위가

시야에서 점점 흐려지는 순간에도,


우리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었던

이유였을 지 모른다.


그렇게 넘어져 아프고도,

다시 한 번 저녁과 노을의 방문을

기다렸던 이유였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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