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16
1.
현실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활극은 영화처럼 멋있지 않다. 오히려 추접지근하다. 듣기 싫은 욕설로 시작해 지저분한 상욕으로 진행되고 욕설로 표현되는 저주로 끝난다. 정말이지 지울 수 있다면 귀라도 씻고 싶은 기분이다. 간혹 물리적 활극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곧 개싸움이 되고 경찰차가 도착하면서 마무리되는 듯싶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진단서 끊고 입원하고 고소하고, 자신의 등 뒤에 누가 있네, 없네, 큰소리치다가 헛소리로 증명되기도 하고, 형사합의금으로 다시 싸우다가 벌금과 전과기록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일어나는 활극에 승자가 있다면 의료기관이나 국가기관 정도이다.
그렇다면 영화나 보자. 바닷가에서 큰 술집을 운영하는 여사장이 새로운 기도(가드)를 찾는다. 주기적으로 깡패들이 행패를 부려 술집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전문 격투가였으나 트라우마을 입고 그만둔 주인공은 찾아온 사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싸움에 이기는 사람은 없어요. … 내 잘못이면 내가 대가를 치르는 거죠.”
현실 활극을 보아도 싸움에 이기는 사람은 없다. 싸움이라는 간판 아래 그저 피해자들만 생길 뿐이다.
주인공은 딱 기대치만큼 행패를 부리는 깡패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먼저 차로 얼마 거리에 병원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상체를 위아래로 흔들어 그들의 무딘 공격을 피하면서 공평하게 일인당 두세 대의 스트레이트를 안면에 먹인다. 코를 감싸고 바닥에 뒹구는 무리 중 하나가 칼을 꺼내든다. 흔들리지 않는 공식이다. 그는 세 배쯤 더 맞거나 관절기로 팔이 부러진다. 다른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싸움을 끝낸 주인공이 직접 운전해 깡패들을 병원에 데려다준다는 점이다. 시시껄렁한 잡담까지 나누면서.
2.
어딘가 싸움이 있다면 대부분 싸움에 배경이 있다. 싸움으로 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 푼돈으로 깡패들을 동원해 술집의 영업을 막고 그 자리를 다른 용도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학생과 전경으로 나뉘어 피 흘리는 사이 깡패적 권력자 몇이 사적 이익을 쌓아가고 있었다. UFC 또한 흥행으로 돈 버는 이는 따로 있다. 재주 부리는 이, 아니 피 흘리는 이와 돈 버는 이는 대대로 따로 존재했다.
3.
현대는 물리적인 싸움으로 득을 볼 수 없는 사회로 변해왔다. 물리적 싸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발전이라고, 진일보한 결과라고 말한다. 문제가 있다면 제도로, 이성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구에는 아직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려는 무리가 있으며 그들이 아직 현실에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움찔 한걸음 후퇴한 것이리라. 인류는 더 나아질 것이고 나아져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현대사회는 물리적 활극이 그 시효를 다 했다. 움찔움찔 싸움의 본능이 일어난다면 링 위에 오르거나 그냥 영화나 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