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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Oct 13. 2024

세상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2

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18

  4) 무엇을? 하느냐고? 당연히 싸운다. 당연한 답이기는 하나 너무 단순하고 재미가 없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로 질문을 확장해 본다. 부부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상대방의 휴대폰을 확보하기 위해 싸운다. 그 이유는 뒤에 나온다.

  5) 어떻게? 부부가 어떻게 싸우는지의 문제, 그러니까 싸움의 방법에 있어서는 보통의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방에 가하는 물리적 폭력부터(이 경우 물리적 싸움 실력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UFC 선수도 물리적인 부부싸움에서 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얼굴에 튄 침방울의 개수로 승패가 정해지기도 하고, 식기나 도자기류, 심지어 과일류 등의 내구성 확인하기, 냉장고나 옷장 넘어뜨려 누운 길이 확인하기, 묵언으로 상대방의 침묵을 압도하기, 단식으로 오래 버티거나 같은 방법으로 상대방을 아사(餓死)시키기, 문자나 카톡일 경우 창의적인 욕 구사하기, 상대방의 핸드폰 빼앗기, 그러다가 순식간에 싸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한 싸움까지 다양한 줄기에 다양한 가지가 존재한다.

 여기서 부부싸움만이 가진 큰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 누가 이겼는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싸움의 두 당사자는 입을 꾸욱, 다문다. 눈물을 흘렸다고 진 것도 아니고 썩소를 흘린다고 이긴 것도 아니다. 간혹 승패에 관한 진술이 있기는 하지만, 한쪽의 증언만으로는 진실 여부를 가릴 수 없다. 이때 누군가 끼어들어 승패를 따지면 안 된다. 그것을 빌미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6) ? 왜? 싸우냐고? 위키백과 이전 시대를 군림했던 뻥리태니커백과서전에 따르면 부부 관계는, 전반기에는 섹스를, 중반기에는 싸움을, 후반기에는 후회를 위해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부부가 싸우는 일은 어느 한 시기에 해당하는 존재의 이유를 충실히 수행하는 존재적 윤리이다.

 ‘왜?’는 원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북반구를 떠도는 바람의 개수만큼이나 많지만 일견 몇 가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매번 창의적으로 변주된다. 단연 톱은 돈 문제이다. 꼼짝 않는 월급 액수로 시작해 옆집 아저씨의 월급, 용돈, 옆집 아저씨의 용돈, 옆집 아주머니가 신은 고가의 구두,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 지출의 주체 문제, 대출금, 상환금, 보험료, 전기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카드명세서 등 모두가 돈의 변주이다.

 배우자의 행적과 이에 대한 의심도 주된 주제이나(궁금하긴 하나) 여기서 길게 얘기할 거리는 아니다.

 현대를 사는 부부에게 거의 모든 싸움의 원인은 하나다. 휴대폰. 그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그들과의 관계가 있고, 돈이 있고, 관심사가 있고, 모든 행적이 있으며 계획된 미래가 있다. 잠시라도 먹통이 된 핸드폰 자체도 싸움의 원인이다. 그래서 폰을 확보하면 싸움에 임함에 있어 우위에 선다. 지폰지기면 백전백승인 시대이다.     


 3.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부부관계도 변해왔다. 당연히 부부싸움도 변했다. 부부라고 해서 반드시 운명공동체가 되고 경제공동체가 되지 않는다. 결혼이 끊어지지 않는 끈이 될 때 억압으로 변한다. 억압은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부부는 싸워야 한다. 

 원래 이래야 하는 부부관계는 없다. 굳이 정의하자면 개인의 특성을 무기로 싸우면서 비교적 평형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까? 하다하다 안되면 관둬도 되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 충분히 싸워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니 일부러 싸우는 건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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