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19
그 더운 날에도 남자는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곁들였다. 그리고는 흥이 났는지 한잔 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휴대전화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전화번호 목록 어디쯤에서 방황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는 서둘러 운동화를 챙겨 신으며 남자를 호출했다.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길의 중반부터 여자는 남자의 몸에서 나는 땀 냄새에 짜증이 일었다. 지나는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쓰였지만 빨리 집에 돌아가 남자를 욕실로 밀어 넣는 방법 말고는 딱히 해결책이 없었기에, 그냥 앞서 걸어 자신이라도 꾸리한 악취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저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악취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더 빨리 걷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남자도 바짝 따라붙었다. 산책길 어디에도 짜증이나 짜증의 원인을 버릴 구석이 없었기에, 어느 산책길은 남녀 간에 벌어진 경보 시합장이 되고 있었다.
시합은 10여 분을 남긴 막바지로 다가서고 있었다. 두 개의 길이 교차하는 지점이 다가왔다. 여자와 남자가 레이스를 펼치는 길은 길게 굴다리를 통과해 S자로 굽이치는 아랫길이었다. 이보다 7~8 미터 높이의 굴다리 윗길은 직선으로 뻗은 길이었다. 한창 피치를 올리며 굴다리에 다가가고 있던 여자는 윗길에서 악취의 남자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남녀를 발견한다. 여자가 멈춰 윗길을 바라보자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남자도 멈췄다.
윗길의 남녀는 정말 반갑게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남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분명 자신을 아는 동네 사람일 것이고 초저녁에 성사된 이런 만남은 10중9,10 2차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내린 어둠 때문에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다. 남자는 힘껏 흔들던 손으로 손나팔을 만들어 입에 대고는 “잘 안 보여, 이쪽으로 더 가까이!”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윗길에서 약간 남은 노을을 배경으로 실루엣만 남은 남녀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손을 흔들어 만들던 원이 빠르게 작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손사래처럼 보였다. 남자가 한 번 더 소리를 치자, 손사래는 달을 가리키던 부처의 손가락이 되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개집이 하나 있었고 그 앞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멀뚱하게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루엣 남녀는 달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개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두 팀 모두 빨리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보 시합의 참가자는 네 명이 되었다. 이 넷은 모두 두 길이 곧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넷 모두, 길의 교차점을 먼저 지나가야 한다는 잘못된 강박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악취에 앞서는 여자만이 킥킥, 참지 못한 웃음을 흘리며 경주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비극의 씨앗을 품은 사건은 반드시 비극으로 현실에 몸을 드러낸다. 네 명의 선수는 교차점에서 딱 마주치고 만다. 일촉즉발의 긴장은 네 명의 참가자를 소돔성의 소금조각으로 만들었다. 이제 싸움의 시작만이 남았다. 그러나 싸움은 이 민망 만발의 순간을 지나서 일어났다. 여자와 남자의 부부싸움이 된 것이다. 이 싸움에서 튀어나온 단어들만 몇 들어보자. ‘악취, 개, 개들, 술, 껄떡, 더러운 목소리, 나쁜 머리, 속도 계산, 다시 악취, 다시는 너랑…’ 뭐 이런 것들이다.
이 싸움의 예를 듣고 나는 하나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리 먼 길로 돌을지언정 일어날 싸움은 일어난다는 진리이다. 일어날 부부싸움은 어떤 사건들이 끼어들어도 반드시 일어난다. 타오르는 불이 보기에 어느 성냥의 불꽃이 씨앗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운명론적이라 비판할지 모르나 이것은 사실이다.
저명한 소설 『뵐룽 아흐레』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스터 뵐룽은 이런 말을 했다.
‘우연이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난 발자국을 슬쩍 밀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운명의 손길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