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19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도(道)를 말해왔다. 도는 길을 뜻하며, 자연의 운행방식에 다름 아니다. 노자는 자연에서 도를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은 물과 같다고 했다(上善若水). 물은 환경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적응한다. 그렇게 흘러 낮은 곳에 머물며 형태가 약할지언정 무엇에도 꿈쩍 않는다.
술 또한 물과 같은 액체이라 대략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양으로 따지면 훨씬 적기에 낮은 곳에 머물 틈이 없다. 주로 병 속에 있다가 사람의 뱃속에서 분해된다. 그런데 누군가 술 마시는 일에도 도를 만들어놓았다. 주도(酒道)이다. 입을 통해 뱃속에 집어넣는 일에, 심지어 씹지도 않고 들이키는 간단한 일에 왜 도가 필요할까?
가만히 따져보면 도는 주로 싸움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규칙 노릇을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발로 걷어찬다면 일상의 도에 어긋나는 일이 되어 경찰차 뒷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반면 태권도(道)에서는 잘했다고 고득점을 주며 유도(道)에서는 실격패라는 사실상 아주 약한 벌이 가해진다. 그러니까 모두 각자의 도를 가지고 있는 싸움이다. 주도가 있다는 말은 술 마시는 일을 싸움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건배는 서로의 잔을 가까이함으로 좋은 술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술자리 초반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계속 건배를 강요하는 일은 상대방에게 술을 강권하는 일로 변질된다. ‘나는 이만큼 마시는데, 너는 뭐 하냐?’, ‘내가 이렇게 취해 가는데 너는 멀쩡하면 안 되지!’, ‘내 주량이 이 정도야! 너는 술도 못 마시는 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내가 다른 일은 너한테 안 되지만 오늘 술로 너를 꼭 이기고 말 거야. 그러니까 마셔!’ 아, 술자리가 시끄럽다. 이때 건배는 이런 못난 외침일 수밖에 없다.
강제로 술을 권하고 억지로 술을 마시며 정신력으로 버티는 일 따위는 자신의 새 차를 누가 더 흉하게 긁는지 마주 보고 내기하는 일보다 못하다. 각자의 시간을 투자하고 돈까지 들여 마시는 술자리를 치졸한 싸움의 현장으로 바꾸지 말라는 준엄한 가르침이 바로 주도이다. 주도가 지향하는 바는 각자 원하는 만큼, 각자 최고의 즐거움만을 남겨야 한다는 자연의 운행법칙과 같은 길이다.
술은 사람의 정신을 만진다. 딱딱했던 정신을 노골노골하게 주물러 유연하게 흔들어놓는다. 더 희망적인 필터를 눈에 끼기도 하고 자칫 더 암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술은 같이 마신다. 한 사람이 늪에 빠지면 다른 이가 건지라는 충격완화장치이다. 물론 나 같은 숙련자는 혼자 마셔도 상관없다. 취중 일인다역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눈 큰 여편께서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히죽이죽 흐물해진 정신은 싸움 방지제 역할을 해야 하며, 먼저 거기에 있던 싸움도 녹아내리게 하는 유연제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리 하고 있다. 대신 간이 고생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 다른 얘기가 남는다. 사는 일에 도가 있다는 말은, 도는 싸움의 규칙이기도 하기에, 노자 또한 사는 일을 싸움의 연속이라고 본 것인가?
뭐, 이런 무거운 얘기는 혹여 뵐룽 아흐레 선생이나 만나면 술 한 잔 받아놓고 물어볼 일이다. 싸우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