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그림일기 17
1.
그림 쌤 사생활이나 폭로할 시간이다. 며칠 전 초저녁, 동네 두개로마트에서 장을 보는 쌤과 우연히 마주쳤다. 조금 낯설다 싶었지만, ‘누구 때문에 동네 마트에 술이 다 떨어졌네, 아니네’ 히죽이죽 농담이나 하다 헤어졌다. 그리고 집에서 뒹굴다 문득 왜 그 장면이 낯설었는지 이유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남자는 카트까지 밀며 장 보는 일을 잘하지 않는다. 식사 대부분을 밖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또 혼자 사는 그림 쌤에게는 연상의 여성 제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쌤을 바라보던 존경의 눈빛이,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불우이웃을 대하는 측은한 시선으로 변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쌤의 냉장고는 그렇게 들어온 김치며 부식통으로 허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사는 쌤은, 냉장고에서 시효를 다한 냉동식품을 모아 버릴 때가 아니면 장바구니를 다잡아 드는 경우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카트 안에 있었던 상품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라면 두 팩, 계란 한 판, 약간의 채소 그리고 수육용 돼지고기 한 덩이.
집에서 조리를 할 재료들이다. 맞다. 식구가 늘었다. 우리 집에 우리 딸놈께서 다니러 오면 꼭 던지는 쌤의 멘트가 있다.
“김자까는 좋겠어. 딸이 집에도 오고. 우리 애는 잘 안 와.”
“오십만 원 준다구 해봐. 왜 안 오겠어? 헉, 너무 많은가?”
“요즘 걔가 나보다 잘 벌어.”
“방법이 없을까? 그럼 돈 달라고 해봐.”
“내 생일에 애한테 카톡 했지. ‘아빠는 잘 있단다, 걱정 말아라.’ 이렇게.”
“그랬더니?”
“카톡으로 돈만 왔어. 애는 안 오구.”
두어 달 전까지 상황은 이랬다. 그러던 어느 날 쌤 따님께서 급작스레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복귀한다고, 급작스레 연락이 왔다고 한다. 나는 쌤의 얼굴에서 63%의 기쁨과 36%의 우려, 그리고 1%의 아쉬움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들 세부항목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니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있다. 쌤 따님께서는 서울로 가면서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갔었다. 그렇게 퉁퉁한 고양이와 통통한 쌤은 서로 정과 털을 주고받으며 잘 지냈다. 그리고 얼마 전 누군가 입양에 실패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쌤은 술김에 맡았다. 여기에 따님 또한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귀향한 것이다. 고양이만 도합 세 마리가 되자 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이 이렇게 좁은지 몰랐어.”
나는 훌륭하게도, 수업시간에 쌤의 등에서 미처 떼지 못한 고양이털 뭉치를 발견하고도 모른 척 했다. 그 털 사이에서 작은 절 한 채를 보았기 때문이다.
2.
겨우 한여름을 내려오던 산은 아차, 작은 절 한 채를 들키고 말았다. 어두운 산이 아닌 밝은 산에 숨어있던 그 작은 집은 들키고 싶었던지 반짝 묘한 빛을 흘렸다.
산의 질감은 작은 선으로 이어진 나무의 그림자로 만들어진다. 욕심을 부렸다. 미세한 선으로 그 그림자를 한껏 그려보려고 했다. 작은 붓을 들고 침침한 눈을 달래가며 캔버스에 바짝 다가앉았다. 두세 시간을 매달렸다가 뒤로 물러나 바라보고는 질겁하고 말았다. 너무 지저분했다. 산의 질감을 살리는 일은 뒤로 미루고 그냥 색을 입혀 산에 숨은 작은 집을 찾아냈다.
(뵐룽께서 잠깐 기거하셨다는 소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