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그림일기 15
무지 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두 여자(여편과 딸놈)에 이끌려 인근 대도시에 진출했다. 뭔가 살 것이 있다는 주장에 패배하고 만 것인데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는 시즌이라 단호한 거절이 통하지 않았다.
50대 남자에게 상가를 걷는 일은 지옥훈련에 준하는 고통의 행진이다. 물론 30대부터 그랬지만 그 고통은 나이라는 숫자의 제곱으로 무거워진다. 아주 느리게 걷기 중에 수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하염없이 천정이나 바라보며 맥없이 기다리기. 그리고 ‘이거 어때? 저거 어때?’라는 영혼 없는 질문에 집 나간 혼백을 불러 대답하기. 이 부분에 있어 대부분 남자는 어떠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반대하는 이가 있다면 뭐,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래서 낸 중재안이 시간을 정하고 나는 카페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작은 카페를 찾아 작은 의자에 몸을 던졌다. 시원한 에어컨 또한 내 독립한 정신을 축복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는데 뭔가 눈을 찔렀다. ‘뭐지?’ 하며 다시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거기에 작은 나무가 한그루 앉아있었다. 그림을 보자.
성 에너지는 생명 에너지의 한 표현이다. 그리고 매우 자극적이다. 그리고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몸이 바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 분야에 있어 나는 좀 리버럴 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뭐, 몸으로 행할 수도 없고 행동으로 옮길 능력도 없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한 뭔들 못할까? 뭐 이런 생각.
같이 그림을 배우는 회원들 중 이 그림을 본 몇 안 되는 남자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푸훗, 작게 웃는다. 여자 회원들은 잠깐 할 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댁이 그렇지, 뭐’ 이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림 선생님은 “아하, 인체를 닮은 나무이군요. 하하하” 이랬다. 그리고 화분을 더 매끄럽게 보충하라고 지엄한 명령을 내렸는데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