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그림일기 16
1.
남들은 상스러운 고독에나 시달리거나 뜨거운 연애를 쫓아 몸이 달아있을 가을에, 혼자 사는 그림 선생님은 다른 일로 몹시 바쁘다. 그림 선생님과 술자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고 언제부터인가 그림 선생님의 조수가 되어 따라다니며 몸으로 겪는 현실이다.
가을이면 전시회가 많다. 누구는 한 해의 결실이라고 말하지만 또 누구는 좌판을 짜고 거기 과실을 얹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일을 몸으로 한다. 전문 예술인의 개인전이야 본인과 갤러리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미술 전문가든, 동호인이든 단체가 전시를 할 경우에는 누군가 나서서 몸으로 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일 대부분이 그림 선생님의 몫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림 선생님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관례이기도 하다.
먼저 동호인들이 한 해 정성을 들인 그림을 잘 마무리하도록 돕는다. 선생님이 그림 강의 때마다 하는 일이니 이 일은 그냥 그렇다고 넘어가자. (봄에 문화재단이나 관에 사업신청을 해 기금을 마련해 놓았던) 전시회 일정이 잡히면 참여자들을 포섭해 전시할 그림을 정하고, 그림 사진과 그린 이의 정보를 모아 도록 작업을 시작한다. 물론 먼저 전시장을 섭외하고 규모를 결정하는 일을 마무리해놓은 상태여야 한다. 여기까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적잖은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니 당연하게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리라 예상할 수 있지만, 문제들의 수위는 항상 예상한 언덕을 넘는다. 누구는 휴대전화를 바꿨고 누구는 해외여행에서 때맞춰 돌아오지 못했으며 또 누구는 때늦은 실연으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해 마감을 못 맞춘다. 실수로 누군가를 빠뜨린다면 욕먹고 사과하는 일이 다반사고, 진행 중 뭔가 얽혀 도록에서 그림이 빠지는 경우가 생겨도 또 배부르게 욕 드시고 다시 인쇄하는 일도 선생님의 몫이다.
직접 가져오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돌아다니며 그림을 모으고 주문한 액자가 오면 포장을 뜯어 끼운다. 물론 액자의 사이즈가 맞지 않는 캔버스는 힘으로 누르다가 피를 보는 경우도 있다. 이때 선생님은 일갈한다.
“다 있다는 다X소에서 이것저것 다 사는 건 다 좋은데, 캔버스만은 쫌!”
이제 그림을 거는 날이다. 나 같이 막 부려먹을 조수가 있다면 전시장으로 그림을 나르는 일은 편안한 시작이다. 이제 그림과 공간을 번갈아 보면서 어느 그림을 어디에 걸지 정한다. 이 일은 조수가 할 수 없다. 그림의 유형별로 모으는 경우도 있고, 그림의 크기와 전시장의 면 또한 고려할 조건이며, 작가들의 나이나 성격을 고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그림을 들어 옮기던 내 팔 근육이 눈치로 알아낸 사실이다.
레일이 있는 경우는 금속 케이블에 그림을 걸고, 없는 경우는 나사못을 박아 고정시킨다. 높이와 간격을 맞추는 동안 그림을 들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일도 내 팔 근육의 일이다. 이후 그림 선생님은 백이십 번 정도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그림을 조정하고 조명을 살핀다. 이때 열심히 사다리를 붙들고 있다가 어지러운 바닥을 치우는 일은 조수의 일이다. 여기에 오픈 행사를 준비하고 사람들 모아 사회를 보는 일까지 그림 선생님의 몫이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면 일은 역순으로 사라진다.
“선생님, 낼모레가 환갑아녀? 이 막노동 은제까지 할겨?”
“글쎄, 한 칠십까지는 해야 하잖을까?”
조수는 그림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한다.
2. 밤길이다. 물론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나는 이른 밤길이다. 봄날의 노을은 덜 익은 살구처럼 시큼하다. 어둠은 까맣지 않다. 어둡지만 까맣지 않고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심지어 푸르라니 빛을 머금고 있다. 조금 있으면 뱉겠지?
몇 년 전 마스터 뵐룽 아흐레께서 순댓국집을 찾아 걸어서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