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23-2
타발적 히치하이크라는 해괴한 말을 편안하게 바꾸자면 승차제안쯤 되겠다. 이렇게 바꾸면 알아듣기에는 편한 말이 되지만 여러 가지 껄끄러운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어감의 힘은 사라진다. 그래서 그냥 히치하이크로.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알싸한 한기에 몸서리치며 누군가 인적 없는 길을 걷고 있다고 치자. 집까지는 한참 걸어야 하는데, 뒤에서 봉고차가 다가와 걸음 옆에 붙는다. 조수석 창이 열리면서 검은 실루엣으로 드러난 운전자가 툭 한마디 던진다.
“저기 텅사리 사시죠? 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어떻게 해야 할까? ‘아, 네!’ 이렇게 촐랑 답하고 홀랑 차에 오를까? 아니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핸드폰으로 당신 차의 번호판을 찍어 여편께 보낸 다음 편안한 마음으로 승차하겠습니다. 피차 만사불여튼튼이 좋으니까요?’ 이렇게 온전한 보신주의를 발현할 수 있을까? 또는 ‘아, 괜찮아요. 배려는 고맙습니다만 댁은 댁의 길을 가시고, 나는 나의 방법으로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 이렇게 약간의 적개심을 드러내며 가볍지만은 않은 거절을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아니면 홀라당 자빠질지언정 볼썽사납게 비명을 지르며 길가 풀숲으로 냅다 뛰어들까?
이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지 못하고 나는 비실비실 봉고차에 오르고 말았다.
이것이 두 번째 한밤중의 히치하이크이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 한잔하고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동네에 내리면 새벽 1시 10분이다. 상경의 목적이 술자리였으니 역 앞 주차장에 차를 숨겨두는 일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역 앞은 순식간에 다시 정적만 남았다. 예전에는 막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요즘은 핸드폰을 흔들어 차를 부르지 않으면 한 대도 오지 않았다. 마중 나온 승용차들과 몇몇 택시가 휭 나타났다 빨리 감은 광고처럼 사라졌다. 초가을 밤바람에는 냉기가 흥건했지만 이도저도 없는 나는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이렇게 모르는 사람과 봉고차에 앉아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안전벨트 딸깍 소리를 기다려 차는 출발했고 운전자는 입을 열었다.
“아까 기차에서부터 쭉 살펴봤습니다.”
갑자기 몸이 굳어졌다.
‘왜? 왜? 왜, 이 남자가 나를 살펴봐? 나는 결혼도 한 데다, 성적 지향도,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근데 왜 나를 살펴? 내가 어디 아파 보였나, 살피게? 의사야? 밤늦게 동네 여기저기에서 오줌 싸는 사진을 찍어 이를 약점으로 내게 바라는 거라도 있나? 아니면 경찰? 후진하다 뒤 범퍼로 가로수를 살짝 들이받은 장면이 CCTV에 찍혔나? 아니면 혹시 내 시를 좋아하는 애독자? 그럴 리가. 나무에 매달린 사과가 번개를 맞고 헐크로 변신해 우리 동네를 뛰어다닐 확률이 더 높지. 그럼 뭐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상하게 몸에 힘이 들어갔고 오른손은 어느새 천정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출발한 차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천천히 달렸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밤중 제 속도로 가면 동네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이러다가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차라리 걷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걷고 싶었다. 창밖 어둠이 더 편안해 보였다.
남자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아뇨, 믿어야죠. 믿으십니까?”
“…………, ………….”
남자는 우리 동네 작은 교회의 목사였다. 나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가을 밤길에 몰려다니는 플러터너스 이파리보다 많은, 죄 많은 무명작가이자 얼치기 과학적 유물론자이며, 긴장하면 말을 버벅거리는 대화 금치산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해야 했다.
차는 믿을 수 없이 느린 속도로 달렸다. 아니 걸었다. 나는 혼자 걷고 싶었다. 그 밤 어떤 배려는 다시는 모르는 사람의 차는 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