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에 당하다, 세 번의 타발적 히치하이크에 관한 소고

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23-3

by 김병호

하기 전에는 죽도록 싫고, 하는 동안은 죽을 만큼 힘들지만, 하고 나서 찾아오는 느른한 상쾌함, 그 하나 때문에 꾸역꾸역 이어가는 것이 운동이다. 여기에 장점 하나를 추가하자면 흥건하게 흘린 땀만큼 저녁에 흥건하게 마셔도 된다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축복이 있다. 저녁에 꺼내 써도 되는 현금을 낮에 예치하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운동을 예찬하는 사람은 아니다. 죽도록 하기 싫은 만큼 애써 마음을 다져야 하는 데다 혼자 감내해야 하는 고통도 크다. 시간까지 투자해야 하며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심지어 돈도 들어간다. 여기 까지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더 많은 한심한 행위이다. (술 마시는 일과 비슷한가?)

그럼에도 우리 같은 업종 종사자(돈 없는 상태 하나만 감내하고는 마음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자유업)가 마음먹고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기로 작정한다면 오행산에 깔린 손오공의 시간 정도는 쉬이 버틸 수 있다. 또 먹고 마실 작정으로 똬리를 틀면 삼장의 제자 팔계만큼은 능히 섬길 수 있으니, 그 결과는 너무도 자명하다. 미인이 아니면서 박명하고, 천재도 아닐진대 요절할 일만 남는다. 지금 내 나이는 박명과 요절을 더한 나이보다 한참을 넘겨 살고 있으니, 그나마 현실에 나라는 현상이 남아있는 것은 꾸역꾸역 운동이라는 공덕을 쌓아온 효과가 아닐까 혼자 그리 생각해 본다.

두세 해 전 초여름 어느 오전이었다. 지난밤 들이킨 액체를 짜낼 목적으로 힘겹고 힘겹게 뒷마을 굴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누구는 느릿느릿 굴러가는 아주 커다란 공을 봤다고 전한다. 누구는 며칠 밥도 못 먹고 흐느적거리는, 탈진 직전의 팔계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늘 그렇듯 차량 한 대가 옆에 다가와 걸음을 맞춘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간다. 농기구가 실려 있는 1톤 트럭이었다. 운전자는 그늘모자를 제쳐 쓴 칠십 가까운 농부였다. 농부 중에도 입 거칠고 짓궂어 보이는 이였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씨익 웃는다.

“저그 텅사리 살제? 타! 델다 줄게. 헛욕 보덜 말고.”

안 그래도 힘없는 다리가 더 풀렸다. 무릎에 팔을 지탱하고 선 팔계는 고개를 저었다. 한 팔을 들어 손사래도 쳤다. 그러나 말은 하지 못했다. 못된 배려에 사양으로 싸워낼 힘도 없었다. 차는 떠났다. 팔계는 생각했다.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간까지 투자해 죽어도 하기 싫은 운동을 죽기보다 힘들게 하는 사람을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배려는 무엇과 비슷한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식당에 들어가는 팔계의 뒷덜미를 채며 ‘밥은 무슨 밥! 살쪄! 밥 먹으면. 쓴 커피나 하자고.’ 이런 격인가?

“니들 여기서 모하니?” 숙박업소 뒷문 앞에서 우연히 엄마를 만난 젊은이의 표정이 그때 팔계의 표정과 닮았을까? 꿈에 부풀어 맞선 장소에 들어서는 노총각에게 인생의 근원적 허망을 포교하는 이의 심보와 농부 운전자의 마음은 얼마나 다를까?

그날 팔계는 타발적 히치하이크를 거절했다. 첫 번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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