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10

엄마의 말

by 김병호

12. 엄마의 말


마당에서 장독대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돌아 뒷집 담을 따라 몇 발작 지나면 또 하나 작은 방이 있다. 뒷방이라 상대적으로 어둡기는 했지만 부엌이 딸려있는 독립적인 공간이라 이곳에서도 몇 부부가 셋방살이를 했다. 이후 형과 내가 쓰다가 온전히 내 방이 되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이 방에서 보냈는데 형은 80년대 초반부터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인지 집안에서의 기억이 별로 없다.


잠자는 일을 제외하고 그 방에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일은, 엄마의 표현을 빌자면 앵앵거리는 일이었다. 여기서 ‘앵앵’은 내 노랫소리이다. 아버지가 큰 맘먹고 사준 LP플레이어에 판을 걸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 마당에서 일하는 엄마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때 주로 듣던 음악은 ‘레드 제플린’, ‘딥 퍼플’ 같은 메탈 밴드들의 것과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들국화' 음악 같은 부류가 대부분이었다. 상상할 수 있다. 어두운 구석방 구석에서 사춘기의 남자아이가 타고난 자신의 성량과 음역대를 한탄하며 악을 쓰는 모습을. 상상하기 싫다.


그 시절 나와 같이했던 책들도 떠오른다. 대부분 공부와는 거리가 먼 책들이다. 긍정적인 순서로 보자면 먼저, 일말의 의심 없이 시대의 아인슈타인을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이었기에 『뉴턴』이라는 과학 잡지를 창간호부터 모으고 있었다. 절대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화려한 과학 일러스트를 접하는 일만으로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인이 된듯했다. 그 빨간 과학잡지는 이렇게 가난한 학생의 수집벽을 만족시켜주는 1호 대상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면서 이 책들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어 아쉽다. 물론 지금 가지고 있더라도 어느 구석에서 두꺼운 먼지만 이고 있을 터이지만.


다음은 삶에 대한 가벼운 경구들이 가득해 쉽게 뒤적거릴 수 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 그리고 사춘기 남자아이가 가지고 있는 이성에 대한, 이성의 몸에 대한 호기심을 서양의 건장한 여성들이 살짝 달래주던 『건강다이제스트』. 엄마는 크기와 제목마저 비슷한 이 두 책을 애써 구별하지 않았다. 대신 이놈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다.

한 번씩 냄새나는 사내놈 방을 청소하고는 문을 나설 때에 엄마는 꼭 한마디를 남겼다.

“썩을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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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온 김에 엄마가 잘 쓰던 단어들 몇을 정리해본다. 먼저 ‘썩을 놈’이다. 때로는 ‘썩어 문드러질 놈’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추측컨대, 아주 오래전 마을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는 한센병 환자들과 연관된 말로 짐작해보지만, 이런 추측이 맞던 틀리던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은 항상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당사자, 그러니까 엄마가 가해자인 아들들을 향해하는 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호칭을 듣는 사람은 화가 난다기보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자신이 엄마의 속을 썩게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킨 것이다. 또 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엄마에게는 자신의 속 상태를 관찰하고 다스리는 치유의 언사가 아닐까 헛짚어본다.


그리고 이 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창아리 염장 빠진 놈’. 이 호칭이야말로 네 형제를 키운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이다. 창아리는 ‘창자’의 방언이고, 염장이라고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뜻은 오래 먹기 위하여 음식에 소금이나 간장을 뿌려놓는 일이다. 또한 염장은 심장을 뜻하는 한자이기도 하다.

먼저 후자를 따라 해석해보면 사람의 내장기관 중 심장이 빠진 상태의 사람을 말한다. 물론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을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상상만큼이나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비유가 아닐까 싶다. 다음으로 염장을 소금과 간장으로 해석하자면 내장에 소금을 뿌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보통 생선으로 젓갈 담그는 경우 내장까지 모두 사용한다. 갈치와 같이 비싼 생선의 경우는 내장만으로 젓갈을 담그는 경우도 있다. 이때 염장이 빠진, 생선의 내장에 소금을 뿌리지 않은 상태, 그러니까 잘 숙성되는 것이 아니라 놓아두면 곧 부패할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썩을 놈’과 비슷한 뜻이 된다.


반대로 창자가 ‘소금에 풍덩 빠진’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요즘 흔히 사용하는 ‘염장 지르다’와 비슷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창자에 소금을 뿌린다는 말. 정답이 있는 얘기는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인 데다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만약 묻더라도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따순 밥 먹고 쓸데없이 뭐 그딴 걸 묻고 그려? 창아리 염장 빠진 놈 같이.”

결론적으로 엄마가 마뜩잖은 사람에게 잘 쓰던 이 호칭이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 말이 엄마의 창작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방학 때마다 놀러 갔던 외갓집에서 외할머니로부터 똑같은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잊지 못하는 단어가 있다. 내가 결혼하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나를 조용히 불렀다. 대부분의 시간, 고성이 정적을 압도하는 시끄러운 집안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엄마는 목소리를 낮췄다.

“너 혹시?”

“예, 뭐요?”

아무래도 엄마에게는 좀 불편한 질문인 듯 머뭇거렸다.

“너 혹시, 멸공방책 허냐?”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한동안 눈만 끔벅거리며 엄마 얼굴을 바라보았다.

“멸공방책 허냐고?”

엄마는 다그쳤다.


예전에 ‘멸공방첩’이라는 말은 어디에나 붙어있었다. 말하자면 ‘무찌르자 공산당, 막아내자 간첩’ 뭐 이런 뜻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을 멸(滅)하자는 무지막지한 말임에도 당시에는 누구도 거부감을 가지거나 이상하게 듣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는 뭔가가 있었다. 어릴 적 이 무시무시한 구호는 구멍가게 입구에, 전봇대에, 학교 유리창 아래에, 농산물 창고 벽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레 붙어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는 서슬 퍼런 정치적 폭압도 사람이 사람을 향해 가진 저주의 끝이 어디인지의 문제도 먹고 노는 일에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멸공방책’이라는 말은 엄혹하게 차단한다는 뜻을 차용해 만든 엄마식의 패러디였다. 멸공방책, 즉 아이를 가지지 않기 위한 방법을 실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신혼이었고 경제적인 상황도 좋지 않으며 아이를 낳아 기를 정신적인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우리 부부는 엄마가 말하는 ‘멸공방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와 이 논의가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불쑥 아이가 생겼다. 굳은 의지로 방어막을 뚫고 태어난 생명이 요즘도 열심히 늦잠을 즐기고 있는 딸아이이다. 이분께서 고등학생 즈음에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주책으로 치자면 아비에 준하는 중량급인 이분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마자 만천하에 커밍아웃을 하였다. 자칭 ‘찢어진 콘돔’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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