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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May 21.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24

그저 사는 일

 25. 그저 사는 일     


 지난 몇 달은 앉아 옛날 생각을 많이도 했다. 나는 유독 옛 기억이 없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이 내게는 블랙아웃인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놀림도 많이 당했다. 형은 나보다 다섯 살이 위인지라 같은 사건도 훨씬 나이 든 사람의 시각으로 남아있기에 내 글의 틀린 곳을 콕콕 집어내고는 했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고 해서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시간의 저 바닥에서 두꺼운 먼지를 이고는 점점 가라앉다가도 누군가, 아니면 어떤 사건이 후, 하고 입김을 불라 치면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연결된 다른 하나를 따라가다가도 떠오른 먼지들에 눈이 따갑기도 했다.     


 좋든 나쁘든 사건이라는 것은 배경이 있다. 배경 앞에서 누군가는 불씨를 놓고 불이 타오르면 누구는 온기를 쬐고 누구는 밥을 해 먹고 누구는 불빛이 무서워 숨기도 한다. 사건은 혼자 불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사는 일이 이런 사건들의 다발이다.

 아들들이 담배를 피웠기에 엄마도 단 한번 담배를 들었고 그 결과 아들들은 진한 욕을 먹는다. 겨울이 오면 연탄을 때야 했고 원치 않게 가스를 들이켜기도 한다. 늦잠을 잤기에 정신없이 도시락을 놓고 나가고 그래서 엄마는 도시락을 들고 학교 복도를 서성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건으로 남지 않고 몇 장면 기억으로만 떠도는 것들도 많다.     


 옛 집 안방에서 다락문을 열면 다락으로 올라가는 턱이 있다. 그 턱에 눈을 대고 내려다보면  나무 틈새로 부엌 솥단지가 보인다. 끓는 물이 내놓는 김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가득 찬 수증기 사이로 음식을 하는 엄마의 손이 바쁘게 오간다.

 오후에 엄마가 시장에 가는 길을 따라나서면 떡볶이 몇 조각이나 손안에 꽉 차는 순대 한 줄이라도 맛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마루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뭐든 귀했지만 좀도둑은 흔한 시절이었다.      


 엄마가 빼놓지 않고 듣는 라디오 방송의 시그널 음악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였다. 잠이 깰 무렵 항상 그 첼로 선율이 들렸기에 지금도 라디오에서 그 음악이 들리면 반사적으로 멀리 있는 수많은 아침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방송을 진행하던 여승은 지금 이 세상에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불교 경전 중에 지장경을 보면 꼭 책장을 넘겨보고는 한다. 엄마가 ‘6시 내 고향’을 보다가 가보고 싶은 곳이나 괜찮은 음식이 나오면 항상 가까이 있는 지장경을 펼치고 구석구석에 메모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모가 다시 눈에 띄면 아들 들으라는 듯 ‘참, 거기 어디여, 거기 참 좋다드만.’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이렇게 생기 넘치던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옻칠한 나무젓가락을 썼다. 쇠젓가락이 무겁다고 했다.


 뜬금없이 형이 대학에 다닐 때에 집에서 욕을 하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당시 대통령 자리를 강탈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욕이었다. 내가 중학교 적이었다. 신문에 그 사람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리고 시인 서정주가 그를 향해 ‘신라의 미소’ 운운하는 축시가 실렸기에 나는 진심으로 어떤 사람이냐고 형에게 물었고 형은 대답 대신 욕을 했다.   


 라면을 보면 어른이 된 쌍둥이들이 라면을 꼭 두 번씩 끓이는 일이 떠오른다. 물론 처음 끓이기 전에 아이들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아놓는다. “야, 니들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이따 달라고 하면 죽는다!” 배부르다고 가로로 고개를 흔들던 아이들은 맵고 자극적인 쌍둥이표 라면이 등장하면 여지없이 달려들어 밥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면 성질 더러운 쌍둥이도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끓여야 한다. 물론 쌍둥이표 고성과 악다구니가 한바탕 휩쓸고 지난 뒤이다.     


 코피를 보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도 있다. 딸아이가 어릴 적에는 아빠의 건강한 몸을 이용해 돈 안 들이고 회전목마를 태워주곤 했다. 일명 삥글이라 부르던 이 놀이는, 엉덩이를 방바닥에 대고 앉아 다리를 모으고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는 아이를 발등에 앉힌다. 그리고 아이가 아빠의 종아리를 꽉 끌어안으면 준비 끝이다. 이제 중심을 잡으며 손으로 방바닥을 밀면서 뱅뱅 돌면 아이는 정말 즐거워한다. 아빠의 경험이 쌓이면 정말 놀라운 속도로 회전할 수 있고 아이의 웃는 소리도 더 커진다. 물론 어지럽다. 둘 모두 정말 어지럽다. 우리 집에 손님이 왔다. 두 살 먹은 손님의 아들을 왜 내가 삥글이를 태웠을까? 그것도 음주상태에서. 삥글이는 자빠졌고 아이는 쌍코피가 터졌다.      


 한 번은 막내가 검도를 배우겠다고 해서 무도관 간판을 보고 같이 올라갔다. 방음문을 열고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붉은 조명 앞에서 둘이 멍하게 서있던 기억은 ‘성인 나이트’라는 간판을 지날 때 떠오르는 것이다.

 무도관 앞에서 흰 개를 만나면 20년을 식구로 살았던 백구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살갑게 쓰다듬어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신생개 시절에 데려왔던 이 개는 피붙이와 바깥사람을 귀신같이 가려내면서 용맹했다. 쌍둥이를 닮아서인지 자주 집을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말년에 1번 조카가 잘 돌봐주었고 화장으로 한 생명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한 생을 이야기하려면 온전히 한 생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기억이 끊어지고 낡아가지 않는다면 생과 이야기 사이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흩어지지만, 다시 생각하면 길 좀 잃으면 어떤가? 나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것은 이뿐 아니다. 아버지 휴대폰 번호는 기억이 나는데 엄마가 쓰던 번호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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