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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May 26.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25

미지근한 에필로그

 26. 시끄럽고 시끄러운,     


 돌아보면 조용하고 평안한 집안도 많을 진데 우리 집은 참 탈도 많은 데다 어디에다 내놓아도 시끄러운 집안이다. 2년 전의 일이다. 제주도에 사는 막내 집에 모였다. 1년세로 사는 집에는 꽤 넓은 마당이 있다. 주변에 집들도 띄엄띄엄 있고 저만치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의 집으로 꽤 높은 곳에 앉아있다. 모두 거나하게 한잔하고는 마당에서 씨름판이 벌였다. 50대들은 웬만해서 하지 않는 편이 좋은 일이다. 부상의 위험이 높다. 물론 술 때문이다.

 얼마 후 경찰차가 빨간 회전 불빛을 휘날리며 찾아왔다. 동네에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웬만해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집안도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참 시끄러운 집이다.     


 이렇게 시끄러운 집안도 있고 적막강산인 집안도 있다. 항상 몸으로 움직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식구들도 있고 각자의 책만 보며 지내는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도 있다. 바로 이런 가족들이(이제 1인 가정도 포함해서) 모인 것이 우리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모습은 각 가정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이 글이 우리 가족 구성원 외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이 가정에도 우리 사회의 역사적 변화와 시대적 상황이 뼛속까지 배어있기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버지 모두 1930년대 농촌에서 태어났다. 가족사의 출발은 엄마와 아버지의 결혼이다. 이전의 역사는 전 세대 가족 구성원의 역사이다. 그렇게 하나의 가족이 탄생하고 어렵사리 서울에 자리를 잡는다. 형과 나 동생들이 태어난다. 온갖 사건과 사고로 점철된 성장기를 거쳐 대부분 1990년대에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2010년대에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이후에는 이야기의 중심이 각자의 가족으로 나뉜다. 그럴지언정 부모 자식 관계보다는 약하지만 형제라는 끈은 아직 남아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가족이 남은 것이다. 이렇게 아직은 넓은 가족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가족 구성원 수의 변화도 시대와 같이한다. 엄마, 아버지 집안 모두 8남매였다. 합치면 16남매이다. 이후 우리 집은 4형제이고, 이 네 가족이 다음 대에 직접 낳은 아이는 5명이다. 현저하게 준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맞은 인구절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사는 형태에서도 요즘 상황을 볼 수 있다. 모두 자영업, 비정규직과 프리랜서이다.

 장소적 변화도 가족사에 큰 줄기이자 서민의 사회상과 어긋나지 않는다. 농촌을 기반으로 생활하다가 1970년대 서울로 뿌리를 옮겼고 남의 집에서 작게 살림을 하다가 또 작은 집을 마련한다. 그리고 옆에 붙어있던 집을 M&A로 확장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공간은 생업에 필요한 창고로 활용되었다. 그렇게 두 분은 당신들의 시간을 다 썼다. 그리고 새롭게 이루어진 가정들은 지금 대부분 서울을 떠났다.     


 형이 이룬 가정은 외형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평균적이며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결혼 후 엄마 아버지와 함께 지냈으며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어 네 명이 한 가족을 이루었다. 사람 둘이 만나 사람 둘을 둔 것이다. 이렇게 겉으로 평균적 가정으로 보일지라도 사람 사는 일에 왜 굴곡이 없었을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내 몫이 아니다.

 형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일을 접고 제주도로 이사 간 일일 것이다. 그 틈을 타 1번 조카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고 지금 만삭의 배를 안고 이것저것 열심히 먹고 있을 것이다.      


 나는 25년 전에 결혼해 딸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다. 곧 독립할 것이지만 걱정은 많다. 걱정이 해결해주는 일은 없다. 이런 숱한 걱정이야말로 선조에게 물려받은 잘 버려지지 않는 유산이다. 이 유산과 함께 내가 꾸리는 작은 현실은 소심함의 결과물이다. 바깥을 대하는 일에 소심함.     


 쌍둥이 중 큰 동생은 좀 이야기가 많다. 많은 사고를 치던 청년기를 지나 결혼을 했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렇게 20대에 결혼하고 30대에 이혼했으며 40대에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자식이 넷이 된다. 딸 둘 아들 둘. 양쪽 모두 두 번째 혼인이기 때문이다. (굴곡진 시간을 살짝 가리고 보면) 효율로 치면 단연 갑이다. 갑질이다. 덕분에 나는 조카의 결혼식에서 처음 조카를 만났다. 말하자면 초면 조카인데, 당연히 조카며느리도 식장에서 초면이었다. 물론 봉투는 넣었다.

 이 가족들 또한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다만 새로 출발하는 가족들에게 사건 사고는 없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막내 또한 쌍둥이 형 못지않게 시끄러운 청소년, 청년기를 보낸 와중에 그래도 정은 훨씬 많은 편이다. 엄마 아버지 말년에 각별하게 지낸 일은 고맙지만 좀 꽥꽥거린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별칭이 ‘꽥꽥이’이다. 참고로 쌍둥이 형은 ‘버럭이’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어떤 행동이 더 나쁘냐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버럭’이라고 말할 것이다.


 꽥꽥이는 긴 시간 미혼으로 지내다 40살 무렵에 제대로 짝을 만났다. 짝은 중국에서 성장기를 보낸 한국 여성이다. 그래서 가진 대륙적 기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크지 않은 체구이나 작은 일에 대범하고 해야 할 일은 척척 해내는 성격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결혼 초에 우리말의 미묘한 어감 차이로 많은 웃음을 준 일 또한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감기에 걸렸을 때였다. 약을 건네며,

 “아버님, 목소리가 맛이 가셨네요.”

 음정은 진정 걱정이 어린 것이었다. 그리고 명절이었다. 차례상을 치우고 화투를 가운데 놓고 모여 앉았을 때이다. 아버지는 고스톱에 고수(?)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막내며느리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버님, 질펀하게 싸셨네요.”

 이 부부는 제주도에서 만난 한 청년을 양자 삼아 즐겁게 지내고 있다. 덕분에 꽥꽥이는 맘껏 잔소리까지 하면서.          


일러스트 by 도터맨 20210526. See you later!





 27. 미지근한 에필로그     


 씨족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임이었다. 호랑이나 자칼과 같은 많은 고양잇과 동물들에게 인간은 잡아먹기 편한 먹이 중 하나였다. 이런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믿을만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필요했다. 이렇게 필요에 의해 모인 원초적인 생존 집단이 씨족이다.

 시간은 지나고 사회는 변했다. 지금의 생존은 최소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을 피하는 일이 아니다. 씨족의 개념이 바뀌고 역할도 변했기에 혈족이 가지는 새로운 역할과 이에 맞는 구성을 찾아내는 일은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이렇게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다가올 시간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 재료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는 일에는 악몽 같은 기억 또한 즐비하다. 악몽은 그래 봤자 꿈일 뿐이지만 사는 일이야말로 진정 험한 일이다. 이런 험한 일만 없으면 사는 일이 천국 같은 것이 될까? 천국처럼 고민 없이 고통 없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살면 행복한 인생일까? 아마 그만한 지옥도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 생이 어떤 게임 같은 것이라 가정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일까? 지루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인생은 지루할 틈 없이 뭔가를 만들고 즐기면서 사는 일이야말로 잘 사는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끊임없이 쫑알거리면서 남편 붙들고 맞고를 치고 있을, 뭔가를 먹으며 몸 안의 아기를 쓰다듬고 있을, 그러면서 마당에 개 세 마리에게 꽥꽥거리고 있을 1번 조카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섯, 아니 일곱 사람(초면 조카들까지)이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두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가족의 역사이며 인류 역사의 하나 가지이다. 삶이다. 별거이기도 하고 별거 아니기도 한 삶. 가족 안에서 사건들이 있을 것이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책임져야 할 때도 있다. 징글징글하게 싸우기도 하고 또 사건을 덮기도 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정 아니면 말아야 한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강제라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채플린이었던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무엇이 먼저인지 모른다. 무엇이 결론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겨우 삶을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을 만큼의 나이와 시야와 또 그만큼의 절망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끌어안을 정도의 인격은 못되고 그런 것은 가지고 싶지도 않다. 나는 미지근하게 사는 일로 마음을 정한 작은 인간이다. 그래서 결론은 남 사는 일에 왈가왈부하기 전에 나나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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