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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Feb 27. 2023

다중우주(Multiverse)

신호등 앞 차 한 대

낡은 차창 안으로 보이는

가족의 일상 속 북적거림

둥그스름 자그마한 공간 안에 펼쳐진

소란스러운 행복의 우주     


유난히 짙은 안개에 잠긴

코앞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

희뿌연 대기의 깊은 산기슭엔

어느 짐승들의 조심스러운 기척뿐

시간이 축축하게 내려앉은 우주     


주말 오후 아파트 단지

듬성듬성 주차된 차들은

마치 예술가가 만든 모자이크

그 사이를 거니는 심드렁한 주민들

지루한 평화가 뒹굴고 있는 우주     


지하철 안 옆자리의 남자

이어폰 너머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와

무릎 위 두꺼운 책가방과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헌 서적들

거대한 고단함 속 소박한 유희가 흐르는 우주     


극장의 불 꺼진 상영관

얇은 스크린 속 세계만이 살아 춤추고

보는 이들은 죽은 채 두 눈만 영롱히

이따금 터져 나오는 몽글한 탄성들

진실과 환상으로 충만한 예술적 우주     


어느 날 내가 당도한 이곳, 신비한 이 다중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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