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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Jul 18. 2021

갑과 을, 강자와 약자

 만인은 평등하다는 이상은 지겹도록 귓전을 때려오지만, 한 조직 안에서 피부로 강렬히 체감되는 건 평등보다 위계와 서열이다. 흔한 말로는 ‘갑을’ 관계. 수많은 갑을의 사슬이 연결된 채 길게 널브러져 하나의 조직, 기관, 회사를 이룬다. 아마 가장 높은 갑은 사장, 가장 낮은 을은 청소원 등의 계약직 단순 노무자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극히 구조적인 갑을의 구분이 존재의 차원에선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관리자 A씨는 호칭이나 격식에 매우 민감한 유형이었다. 회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그보다 아래 직급이었고, 그러니 모두 그를 존칭으로 부르며 존대하는 게 당연했다. 사소한 실수간혹 잘못된 호칭으로 불렸다고 해도, 그것은 말 그대로 실수일 뿐 결코 그에 대한 비하나 모욕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굳이 어느 직원이 그런 뉘앙스를 적으로 티 내고 드러내며 관리자를 부르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런 사소한 말실수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분노를 드러내곤 했다. 그가 드러내는 불편한 심기의 기저에 놓인 것은 분명한 분노였다. 그는 이토록 늘 예민한 상태였고, 매우 작고 별것 아닌 많은 것들이 자신의 위치를 위태롭게 하고 강함을 깎아내릴까봐 노심초사하는 듯 보였다.


 반면에 청소원 B씨는 주로 미소를 띠고 다녔으며, 스트레스를 충분히 받을 만한 상황에서도 웬만하면 ‘그럴 수 있지, 뭐’하며 무던히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이 매우 숙련된 고난도의 감정 연기일 수도 있지만, 그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낸다고 믿던 내게 그 모습들은 충분히 진심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웃었고, 진심으로 관용적이었다.




 과연 위의 A와 B 중에서 누가 진정으로 강한 존재인가. 사회적인 관점에선 물론 A가 더 강할 것이다. 그는 위계상 더 높은 사람으로서 B보다 훨씬 많은 권력과 명예와 부를 가졌다. 그러나 존재의 차원, 사회적 구조라는 인위적 그물망을 찢고 들어가야 하는 더 깊고 내밀한 그 차원에선 분명 B가 더 강한 존재이다.


 B가 강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자신이 아래에 놓인다는 것, 자신이 더 힘쓰고 더 많이 희생하며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등을 모두 ‘그러든지!’ 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신이 정말로 보잘것없고 약한 존재라는 것을 납득한 자의 자포자기나 체념과는 다르다. 오히려 사회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낮잡아보고 자신의 가치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런 것들이 자신의 존재 자체에 작은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 수많은 사물화 혹은 무화(無化)의 시선이 수직으로 꽂혀 들어와도 자신의 알맹이는 아랑곳 않고 존재한다는, 진정한 힘의 여유. 바로 이것이 B를 강한 존재라 확신하게 하는 이유이다.




 진정으로 괜찮다고 웃으며 더 희생하면서도 ‘나 자신이 안다’라는 이유로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이나 강한 존재의 내면이다. 인정을 받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질주하는 이들에겐, 분명 쓰러지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갈 줄 아는 강함이 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괜찮아’라는 언명으로 굳건히 서서 기꺼이 낮은 곳에 자리하는 이들에겐, 질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의, 어쩌면 더 숭고할지도 모를 종류의 강함이 깃들어있다.


 우린 흔히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유명인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그들을 본받으려 하면서도, 막상 가까운 주변에 그런 존경의 시선을 보내보려는 시도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제 힘과 위대함의 범위를 더 깊숙한 세계로까지 확대해보자. 우리가 ‘감히’ 은연중에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던지며 지나갔던 바로 그 사람이야말로, 실은 인간으로서 가장 먼저 본받아야 할 진정한 ‘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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