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창승 Jul 27. 2021

밤을 기다리며

바느질을 위해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곧게 뻗어 내려오는 빛줄기

그 용맹한 기세에 눌려

문을 나서지 못한 채

심드렁한 시계와의 하염없는 눈맞춤     


바람의 농담에 히죽거리며

놀 듯이 가볍게 거닐려던

산책로는 하이얀 빛 덩어리에 빠져

보이는 건 아지랑이의 허우적거림뿐

달의 기척은 언제쯤이면     


양보할 기색 없이

고집스레 쨍쨍한 녀석을 보며

원망은 부스스 깨어나 몸을 일으키고

어느덧 꿈꾸는 어둠과 그늘의 세계

그 안에서라면 기쁨 넘칠 것만 같은     


그러다 실수인 양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작년 이즈음 잿빛 비바람의 기억

해는 더 이상 뜨지 않는다며

귀납론을 비웃던 장마의 비관론

우울을 배불리 들이켜던 우리     


그토록 간절했던 빛무리의 쏟아짐은

이제 환호 아닌 야유로 흠뻑 젖고

지금의 우리가 바라는 애매모호는

늘 그렇듯 주저앉는 척 지나쳐 갈 테지

모든 걸 잊은 세계는 다시 무엇을 원할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 마법사의 환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