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을 위해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곧게 뻗어 내려오는 빛줄기
그 용맹한 기세에 눌려
문을 나서지 못한 채
심드렁한 시계와의 하염없는 눈맞춤
바람의 농담에 히죽거리며
놀 듯이 가볍게 거닐려던
산책로는 하이얀 빛 덩어리에 빠져
보이는 건 아지랑이의 허우적거림뿐
달의 기척은 언제쯤이면
양보할 기색 없이
고집스레 쨍쨍한 녀석을 보며
원망은 부스스 깨어나 몸을 일으키고
어느덧 꿈꾸는 어둠과 그늘의 세계
그 안에서라면 기쁨 넘칠 것만 같은
그러다 실수인 양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작년 이즈음 잿빛 비바람의 기억
해는 더 이상 뜨지 않는다며
귀납론을 비웃던 장마의 비관론
우울을 배불리 들이켜던 우리
그토록 간절했던 빛무리의 쏟아짐은
이제 환호 아닌 야유로 흠뻑 젖고
지금의 우리가 바라는 애매모호는
늘 그렇듯 주저앉는 척 지나쳐 갈 테지
모든 걸 잊은 세계는 다시 무엇을 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