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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Sep 29. 2021

낯섦

낯설다.

새로 발을 들인 흙

흥분한 원주민들의 낯선 목소리

그들의 피부를 타고 흐르는

이곳의 모호한 공기가

나의 신경을 잔뜩 옥죄며 끌어안는다.     


낯설다.

온 지 수 년째인 숲

늘 같은 이웃들의 늘 다른 듯한 시선

지겨울 만큼 똑같나 싶을 때

느닷없이 솟아오르는 사건들은

나의 타성이 자리를 찾자마자 걷어차 버린다.     


낯설다.

평생을 몸담아 온 세계

끝없이 휘몰아치는 인연의 발길질

지혜를 시늉하며 거들먹거리던 오만은

시간만이 알고 있는 차이들의 급습으로

나의 영혼을 한시도 쉬지 못하게 쥐고 흔든다.     


물의 마음을 타고난 이들에게

지독히도 낯설 뿐인 낯섦은

떨어져 깨지기 직전의 그릇처럼

곤두서 깨어있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낯설지 않은, 그런 낯섦이다.     


온 피부와 터럭과 감각으로

소용돌이의 모든 나선을 느끼고

그 세밀함을 이해해야만 하는 비극과

머리카락 한 올의 변화에 몸서리치며

장대한 굴곡의 미끄럼틀을 탈 수밖에 없는 희극     


낯섦과의 조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의 의자에 앉아 한 권의 책을 펼친다.

모든 페이지가 낯설고 어색한 독서의 시간은

고통과 피로라는 저주이면서도

읽고 사유하고 추상하는 자들만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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