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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Apr 01. 2022

섬세함과 예민함이라는 하나에 대해

 섬세한 사람을 만나 그와 대화할 때면 감탄과 감동이 찾아오는 반면, 예민한 사람과 마주할 때 맞닥뜨리는 감정은 주로 피로와 불편이다. 그리고 한 인물에게서 두 모습이 모두 드러나는 진실을 목격하면, 우리는 당황 혹은 실망을 느끼곤 한다.


 많은 경우에, 예민한 줄로만 알았던 이가 섬세한 면을 보일 땐 ‘별로인 사람의 의외의 모습’으로 간주되고, 섬세한 사람이라 여겼던 이가 예민함을 표출할 땐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별로인 실상’으로 판단된다. 이런 상황들에 대한 반응이 ‘의외’ 혹은 ‘실상’이라는 단어들로 설명된다는 것은 우리가 상대에게 섬세함을 기대하면서도 예민함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논리와 사실에 늘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게 인간의 기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대의 내용이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의 지각(知覺) 여부는 꽤나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단언하자면 섬세함과 예민함은 본질적으로 하나다.


 감각의 활로가 상대적으로 많이 열려 있어, 주변으로부터의 자극을 더욱 고스란히 수용하는 성질. 한 단어로는 ‘민감하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이러한 특성으로부터 섬세함과 예민함은 모두 발현된다. 이들은 그저 한 존재의 두 가지 양태일 뿐이다.


 상대의 몸짓이나 표정, 말투 등의 작은 변화를 알아채고 그것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섬세하지만,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들어오는 여러 자극에도 즉각적이고 변별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기에 예민하다. 긍정적인 면을 원하고 부정적인 면을 원치 않는 것은 욕구의 자명한 형식이지만, 그럼에도 어느 한 사람에게 예민하지 않고 섬세하기만을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우린 스스로 많은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


 내 감정의 기복을 크게 힘들이지 않고 포용하거나 흘려내는 사람의 무던함으로부터 내밀하고 미묘한 부분에서의 공감 능력을 찾아내기란 힘들다. 또한, 매우 사소한 지점까지 파악하고 세심하게 배려해줄 줄 아는 이에게 늘 단단하기만 한 안정감을 기대하는 것은 실패로 끝나기 쉽다. 그런 점에서 탁월함은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섬세함과 예민함의 구분이 실체적 구분이 아닌 양태적 구분이라는 점에 대한 인지는 결국 타자를 왜곡된 기대와 일방적 실망의 늪에서 구해주고, 나 자신으로 하여금 그를 더욱 또렷이 직시할 수 있게 만든다. 타자라는 해독 불가한 텍스트를 이렇게나마 더 선명히 바라본다면 그와의 관계는 전보다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못지않게, 혹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다.




 특히나 내가 사랑하거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에게 섬세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을 때 혹은 그 사람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했을 때. 갈등 관계에서 남 탓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들 속에서 우린 종종 자책에 빠진다. ‘그걸 알아챘어야 하는데’라며, ‘그 정도는 그냥 넘기고 말았어야 하는데’라며, 우리는 스스로를 책망하곤 한다.


 상대를 향한 부족한 배려나 날카로운 반응 등에는 나의 책임이 전무(全無)하기 힘들고, 따라서 자기반성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것은 대개 옳다. 다만 우리가 놓쳐선 안 되는 것은 우리의 그러한 부족함의 뒷면엔 상대를 웃게 할 수 있는 매력이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섬세함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사람에겐 상대의 기복을 더 잘 받아낼 둔감함이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예민했던 반응에 후회하는 사람에겐 상대의 작은 변화에도 눈 맞추어주는 세심함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사고는 특히 습관성 자책에 빠져 지내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심리적 전환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는 자신의 단점을 외면하는 부정이 아닌, 단점과 공존하는 장점까지 자각하는 긍정이다.




 결국 섬세함-예민함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의 앎에서부터 확장되는 성찰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타인과의 관계를 넘어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 장점과 단점이 단순히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닌, 그 장점 자체가 곧 단점이 되기도 하며, 단점 역시 장점으로 화(化)할 수 있다는 사실. 이는 관계 안에서 완벽한 좋음을 허락받을 수 없는 현실의 씁쓸함인 동시에, 전적인 나쁨의 길에서 아픔만 겪진 않을 거라는 현실의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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