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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May 12. 2022

어느 우울의 일기

 요새 힘들어하고 있는 지인 한 명에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를 건넸다. 그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는 진심이 담겨있었음에도, 그것은 거짓 위로였다. 항상 잘 풀리지 않았던 그의 일이 앞으로는 잘 풀릴 거라 기대하는 것은 사실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사라지기 전까지 끝내 괜찮아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뱉는 “이제 괜찮아.”란 말은 괜찮지 않은 현실에 대한 적응 혹은 순응의 결과일 뿐이다.


 인생은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고 밝은 미소로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난 그에게서 인생에 대한 깊은 긍정을 느꼈고,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는 멋지고 착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삶이다. 나에게 있어서 삶이란, 살아내는 것이자 버텨내는 것이다. 이 극명한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재산, 성향, 재능 등 많은 요인들이 떠오르지만, 이것들의 차이를 존재케 하는 근본적이고 ‘합당한’ 원인을 밝히는 건 불가능하다. 그와 나의 다름은 지독한 어둠에서 연원(淵源)한 것이고, 그래서 삶의 다른 이름이 부조리인 것이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이 주관주의적 명제는 때로 현인들의 진리인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현실의 횡포를 외면하기 위한 회피 같기도 하다. 객관과 물질의 위력이 이토록 강한 세상에서, 과연 생각은 나의 삶을 행복으로 변화시킬 만큼 강한 것인가. 이런 생각이야말로 나를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처방은 병을 전혀 낫게 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차이를 차이라, 아픔을 아픔이라 생각할 뿐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지배하는 부조리가 ‘차이’라면, 자신과의 관계를 지배하는 부조리는 ‘동일성’이다.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끝내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동일성을 깨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앎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나보다 더 유능하고 깊지만, 꿈속의 나보다 더 무능하고 얕다. 나의 분노와 완벽주의를 내면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유약함과 나태함이고, 이것들은 내가 나아갈 수 없도록 주저앉히는 중력이 된다. 그 중력장 속을 유영(游泳)하는 두려움과 비겁함과 욕심은 내 시계의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다.


 나는 내 안의 독(毒)들을 알고, 이들에 대한 해독법도 안다. 변화하거나 자족(自足)하거나. 변화가 명백한 진전이고 자족이 진정한 만족이라는 전제하에, 둘 사이 옳고 그름의 구분은 없다. 고작 두 개뿐이니 가야 할 방향은 단순함에도, 다리는 어느 쪽으로도 쉽게 움직이질 않는다. 나아가지 않으려는 관성은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하다. 나는 나를 충분히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어느 누구보다 혐오하고 한심스러워한다.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모순(矛盾)인데, 이 역시도 벗어날 수 없는 원환(圓環)이라는 점에서, 광의(廣義)의 동일성에 속한다. 내 안에는 내가 아끼는 이들에 대한 부정과 비하가 존재하고, 나와 내가 욕하는 이들 사이의 끔찍한 닮음이 존재한다. 나는 늘 분개하며 비판해왔던 물질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품고 있고, 잠재성과 생성의 철학을 옹호하면서도 단정적이고 냉소적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그토록 중시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잊을 수 없는 무례와 기만을 저질러왔다. 이 지저분하고 험피(險詖)한 모순들은 끊임없이 킥킥대며 나를 조롱하고, 비웃음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타자와의 차이도, 자기와의 동일성도, 모두 나의 삶을 버티는 것으로 정의하게 하는 거대한 법칙들이다. (일부의 유희하는 이들과 달리) 버티고 견디고 헤쳐나가며 살아내야 하는 이들의 삶이란 괜찮아지기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괜찮아질 거란 위로를 내뱉는 것조차 씁쓸하고 공허하다. 끝내 평탄해지지 않는 길을 우리는 굽은 허리로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면 잠깐씩 쉬면서,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여기서 구태여 강박적으로, 진부하고 낙관적인 결론을 향해 부회(附會)하지는 않겠다.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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