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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Oct 23. 2022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내 머리를 감겨주던 미용실 직원분이 물었다. 내 기억으로는 최소한 3년 이상 다니고 있는 미용실이다. 어느 날엔 살짝 차가운 편이었고, 또 어느 날엔 살짝 뜨거운 편이었으나, 항상 넓은 의미로 괜찮은 범위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 온종일 서비스를 제공하느라 지쳐있을 직원들에게 까다로운 손님이 되기 싫은 마음이 큰지라, 늘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 답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고, 다만 소심한 예의를 갖춘, 폭넓은 진실일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시원한 듯하면서도 미지근했고, 부드러움을 넘어서 덥지 않은 포근함까지 느껴졌다. 심지어 덜 좋은 온도였다가 조절을 거쳐 더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내 두피에 처음 와닿는 그 순간부터 이미, ‘더 괜찮을 수가 없을 정도로 최적의’ 온도를 품고 있는 물이었다. 온도의 무한한 스펙트럼 속에서 어떻게 이 정도로 적절한 하나의 지점이 내게 단번에 다가올 수 있었을까. “네, 괜찮아요.”라는 말의 진실성이 오늘처럼 높고 견고하던 적이 없었다. 답을 내뱉은 직후에 나는 깨달았다. 이건 기적이다.     


 무심코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되는 것을 보통 기적이라고들 하지만, 그렇게 허황스럽고도 거창한 일만을 기적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긍정을 낳겠는가. 그것은 그저 우리의 일상을 ‘기적 없는 따분함’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결과를 빚을 뿐이다.     


 더없이 완벽하게 좋은 온도의 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는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지금이야말로 기적적인 순간이라고. 내가 바로 그 순간을 알아채 만끽하고 있는 것이라고. 사소함과 신비함은 공존 가능하고, 그 작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교집합 속에서 어느 기적이 번뜩이며 튀어 오른다. 그 미세하게 타오르는 움직임을 섬세한 감각으로 포착해 누리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몫이다.     


 미용실을 나온 후 나는 가까운 영화관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았는데, 마침 그것은 내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할 만한 작품이었다. 완벽한 물에 이어서 이토록 훌륭한 영화까지 같은 날에 마주쳤다는 것은, 오늘의 내가 기적 위를 걸었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게 알려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오늘의 나는 기적을 마주했고, 그럼으로써 얻은 동력을 품고 내일을 향한다. 어느 날이 될지는 모르더라도, 나는 분명히 또 기적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단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숨죽여 웅크리고 있는 웃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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