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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Sep 01. 2023

마당 넓은 집

라일락꽃나무

  스무 살이 끝나갈 무렵 잠시 큰댁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딱히 대문이랄 것도 없는 돌담 입구에 커다랗게 심어진 라일락꽃나무가 화려했던 마당이 꽤 넓은 ㄱ자 한옥집이었다.


  라일락꽃나무를 시작으로 3평의 텃밭이 돌담 아래 있었고 ㄱ자집을 빙- 두른 돌담을 따라 뒤뜰엔 개살구나무 몇 그루와 개나리가 심어져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 돌 듯 라일락꽃나무와 마주한 돌담 끝엔 진돗개 닮은 누렁이 집이 큼직하게 지어져 있었고 그 옆에 아침마다 따뜻한 달걀을 낳아 주는 닭들의 집이 있었다. 부엌을 마주하고 있는 봉당 아래는 펌프와 나란히 두 평 남짓 꽃밭도 있었다. 그 모든 자연스러움을 잘 지켜주듯 입구에 문지기처럼 환하게 비춰 주는 라일락꽃나무는 큰집 풍경 중  으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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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면 라일락꽃 향기가 마당 가득 채우고도 대청마루를 통해 내방까지 들어와 나를 깨우곤 했는데 그렇게 잠을 깨는 아침이 너무 행복한,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화려해지는 그런 집이었다. 뿐만 아니라 큰댁이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서 라일락이 피는 때면 마을이 다 환하게 보일 정도로 그 화사함이 더해져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한몫을 했고,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당찬 기운을 주던 그런 나무였다.


  그런 라일락꽃나무가 어느 날 외출했다가 온 사이 없어졌다. 전후 사정을 물으니 몇 가지 이유로 나무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무가 너무 커서 골목으로 차가 지나다니는데 지장을 준다는 동네 민원과 나무가 집보다 더 크면 운이 하락한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그 나무를 없앴다고 하여 큰댁이 그리 운이 트인 것도 아니고 옆집과의 사잇길은 옆집이 신식집으로 짓게 되면서 넓어졌다. 굳이 라일락꽃나무를 헤치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나무를 없애기로 말을 꺼낸 누군가가 나는 정말 경멸스러웠다.


  나무는 밑동이 잘리고 다시는 싹을 틔울 수 없게 불로 지짐을 당하고 콘크리트에 덮였다.


  이후 내겐 라일락꽃나무가 없는 큰댁은 더 이상 특별한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아주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이유 때문에.


- 2017년. 체칠리아정

사진은 큰댁과 비슷하여 빌려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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