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조 60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칠리아정 Sep 13. 2023

궁리

마라도성당

소원 품은 마음들을 굽어 보는 저 등허리

바람에 잘려나갈 말꼬리도 놓치지 않을,

 

해변을 건너온 바람,

 

기도는 선착순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미완성이고,

마무리 짓지 못한 문장들로 가득하지만,

 

마라도 벼랑 끝에는

봄꽃들로 환하다

 

처음과 끝을 여미고 다독이는 건, 신의 몫

내쳐진 마음까지 끌어당겨 위로하는

 

마라도 등 굽은 성당은

목하, 궁리 중이다

 


 - 정온유. '궁리_마라도성당' 전문. 다층 2023년 봄 통권 97호

사진은 친구가 제공

늘 욕망을 드러내는 기도만 하느라 저 등 굽은 성당을 깨닫지 못했다.


풍경화엔 '부감구도'라는 각도가 있다. 살짝 굽어 내려다보는 정도의 각도인데 각도기로 나타내기가 애매한 구도이다. 이는 그리는 이가 풍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각기 다르고 그의 눈길이 가 닿는 애정의 각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전적 표현으로는 '내려다보는' 정도로 표기되어 있다.


나는 이 각도를 나의 신이 나를 내려다볼 때의 그 굽은 등의 각도라고 생각하며 '궁리'가 떠올랐다.


궁리는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깊이 생각'하는 뜻으로 어떤 사물이든 상황이든 애정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자애로워야 하고 긍휼 한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행위 말이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볼 때,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볼 때, 보살펴야 하는 상대를 챙겨야 할 때 부감구도와 궁리가 연결된다.

이는 물리적일 수도 있겠으나 추상에 더 가깝다.

때론 추상이 상보다 더 명확할 때가 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저 등 굽은 성당처럼 궁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